우리에게 냄새 맡는 스마트폰이 필요한 이유

우리에게 냄새 맡는 스마트폰이 필요한 이유

에스콰이어 2023-02-07 19:00:00 신고

우리는 오감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는다. 이 중 후각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어느 정도일까?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인물이 있다.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에 사는 조이 밀른(Joy Milne)이라는 70대 여성의 이야기다. 그녀는 10대 시절부터 교제하던 남성과 20대 중반 무렵에 결혼했다. 결혼한 지 10년쯤 지난 어느 날, 그녀는 남편에게서 평소에 맡아본 적 없는 특이한 냄새가 나는 것을 감지했다. 그로부터 12년 후, 남편은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이후 밀른은 파킨슨병 환자들의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종종 생겼는데, 다른 파킨슨병 환자들에게서도 남편에게서 나는 것과 같은 냄새가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 독특한 냄새가 파킨슨병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냄새로 파킨슨병을 진단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의사에게 제시했다.
밀른의 제안에 관심을 보인 의사는 그녀의 능력을 테스트해보기로 하고, 6명의 파킨슨병 환자와 6명의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이들이 입었던 티셔츠의 냄새를 맡고, 누가 파킨슨병 환자인지 판별해보라고 한 것이다. 놀랍게도 이 여인은 6명의 환자를 정확하게 골라냈다. 다만 실수가 있었다. 건강한 6명 중 1명을 파킨슨병 환자라고 판별한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8개월 뒤, 밀른이 파킨슨병이라고 주장했던 건강한 사람이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밀른의 비범함이 입증된 셈이다. 냄새가 인간의 건강과 관련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놀라운 실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냄새는 무엇일까? 인간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냄새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해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크라테스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이 세상 만물은 모두 아주 작은 입자로 구성돼 있다는 ‘입자설’을 주장했다. 그는 냄새 역시 작은 입자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향기로운 냄새와 불쾌한 냄새의 차이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향기로운 냄새는 동글동글한 입자로 구성되고 불쾌한 냄새는 삐죽삐죽하게 모가 난 입자들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꽤나 흥미로운 생각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과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도 냄새에 대한 견해를 이야기했다. 플라톤은 멀리 떨어져 있는 꽃으로부터도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점에서 미루어 보아, 아마 냄새는 가스나 증기 같은 형태일 것이라는 ‘증기설’을 주장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달랐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냄새를 맡고 먹이를 찾아 움직이는 걸 보면 증기 형태는 아니고 아마 파동 형태일 것이라는 ‘파동설’을 주장한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후대 과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현대 과학이 발달하면서 냄새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진 건 화학자들이었다. 냄새의 원인 물질이 화학 분자로 이뤄져 있으니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냄새는 크게 두 가지 분류로 나뉘는데, 냄새의 원인을 제공하는 ‘물질로서의 냄새’가 있고 이를 맡고 인간이 느끼는 ‘정신적 느낌으로서의 냄새’가 있다. 전자는 ‘냄새 물질’이고, 후자는 ‘냄새 느낌’이다. 화학자들은 이 둘 간의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 관련 연구를 하면 할수록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대부분의 냄새 물질이 한 종류의 물질로만 이뤄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한 종류의 냄새 물질인 경우에도 농도에 따라 냄새 느낌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돌(indole)’이라는 물질은 농도가 낮을 때에는 은은한 재스민꽃 향기가 나지만 농도가 높아질수록 점차 나프탈렌 냄새가 나고, 농도가 과도하게 높아지면 똥 냄새로 변한다. 이런 사례로 인해 냄새 물질과 냄새 느낌을 연계하려는 노력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렇듯 ‘냄새’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규명하지 못하고 세월이 흐르다가 2004년에야 드디어 냄새의 정체를 밝힌 공로로 미국의 분자생물학자인 리처드 엑셀과 린다 벅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들에 따르면 우리의 뇌가 인지하는 냄새의 정보는 냄새 물질의 화학성분 그 자체가 아니라, 냄새 물질이 우리의 코로 들어와 코 속에 존재하는 400여 가지의 후각수용체와 결합해 생성된 새로운 형태의 정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보는 마치 QR코드와 같이 모든 패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패턴 정보라는 게 세상에 알려졌다. 여기서 후각수용체는 우리의 코 속에서 냄새 분자를 감지하는 센서 소자에 해당한다.
최근 ‘냄새의 디지털화’가 화두다. 인간의 코를 대신할 수 있는 전자기기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냄새 물질에 의해 생성되는 패턴 정보를 구현하고 저장하는 과정이 바로 ‘냄새의 디지털화’다. 시각과 청각 등의 디지털화에 비해 후각의 디지털화가 늦어진 것은 냄새의 정체 자체를 규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고, 냄새를 맡는 장치의 필수 부품인 ‘후각수용체’ 생산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고도로 발전한 생명공학기술에 힘입어 인간 후각수용체를 산업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고, 이를 사용한 ‘바이오전자코’ 개발 연구도 진행돼왔다. 일부 기업에서는 산업화도 추진 중이다. 아직 인간의 코처럼 다양한 냄새를 구별할 수는 없지만, 특정 물질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게 감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 머지않은 장래에 인간 코의 능력을 뛰어넘는 성능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냄새의 디지털화가 필요한 이유는 뭘까. 앞에서 얘기한 냄새 맡는 초능력을 가진 여인, 밀른과 같은 이들은 극소수다. 그러나 바이오전자코는 밀른만큼, 아니 그 이상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 바이오전자코를 이용해 냄새를 디지털화하면 인간이 맡지 못하는 냄새까지 정밀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활용 방안은 무궁무진하다. 인간의 후각수용체가 400여 종류임에 반해, 개는 800여 종류, 쥐는 1300여 종류를 갖고 있다. 인간보다 후각이 훨씬 뛰어난 개의 경우 후각을 이용해 마약과 폭발물을 탐지하는 일은 물론, 더러는 주인의 냄새를 맡아 질병을 진단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팬데믹이 기승을 부리던 당시 핀란드의 헬싱키 국제공항, 칠레 산티아고 국제공항 등에서는 코로나19 감염자 선별을 위해 개를 공항에 투입한 바 있다. 그리고 뛰어난 후각으로 폭발물 냄새를 민감하게 맡지만 몸이 가벼워 지뢰를 터트릴 위험이 없는 주머니쥐의 경우 수많은 지뢰를 찾아내는 일에 쓰이기도 했다.
지금껏 인간은 이렇게 냄새 탐지를 위해 동물을 이용했으나, 이러한 일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동물의 훈련과 유지, 관리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냄새의 디지털화가 이뤄지면 개 또는 후각이 민감한 다른 동물에 의지하지 않고도 냄새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됨으로써 많은 분야에서 자유로운 활용이 가능해질 것이다. 밀른이 그랬듯 질병을 진단할 수도 있고, 개와 쥐들을 썼듯 마약과 폭발물을 감지할 수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음식의 신선도와 부패도를 측정하고, 음용수의 이취와 독극물 확인에도 쓰일 수 있다. 환경오염이나 제조업의 공정 모니터링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향과 관련해 와인이나 커피, 향수, 화장품 등의 산업 분야에서도 활용 방안은 무궁무진하다.
냄새 맡는 스마트폰이 생겨날 미래를 상상해본다. 그간 후각은 시각과 청각 등 다른 감각에 비해 세간의 관심에서 다소 떨어져 있었다. 다른 감각 대비 디지털로 활용하기까지의 과정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냄새의 디지털화’가 가능해지면 이제까지는 불가능했던 많은 것이 일상에서 가능해질 것이다. 그야말로 새로운 정보의 장이 열릴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이 생겨나기 전에 상상도 못 했던 경험을 이제는 쉽게 할 수 있듯, 냄새가 디지털화된다면 우리의 상상력이 정말 보잘것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박태현은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다. 〈냄새와 맛의 과학〉 〈영화 속의 바이오테크놀로지〉 〈bioelectronic nose〉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DITOR 김현유 WRITER 박태현 ILLUSTRATOR MYCDAYS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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