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뤼크 고다르 사망 소식 이후! 그를 둘러싼 무성한 소문에 대하여

장뤼크 고다르 사망 소식 이후! 그를 둘러싼 무성한 소문에 대하여

코스모폴리탄 2023-02-09 00:00:00 신고

3줄요약

전설적인 프랑스 영화감독 장뤼크 고다르가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이튿날인 2022년 9월 13일, AFP 통신은 고인의 법률 고문인 파트리크 잔느레가 “장뤼크 고다르 자신이 조력 자살을 통해 사망했음을 굳이 숨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장뤼크 고다르의 조력 자살은 ‘죽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한 크고 작은 논쟁의 불씨를 당겼다.

죽음은 장뤼크 고다르의 작품에서 꽤 빈번하게 등장하는 주제다. 장뤼크 고다르의 장편영화 데뷔작이자 기념비적 작품인 〈네 멋대로 해라〉(1960)에서 장피에르 멜빌이 연기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먼저 나는 불멸이 되고 싶어. 그런 다음 죽는 거지.” 〈미치광이 피에로〉(1965) 마지막 시퀀스는 좀 더 적나라하다. 인서트 컷으로 ‘Lart(예술)’라고 적힌 파란 종이가 등장하고 누군가(아마도 장뤼크 고다르 자신) 여기에 검은 펜으로 알파벳 ‘m’과 ‘o’를 추가해 ‘La mort(죽음)’라는 단어로 바꾼다. 뒤이어 따라붙는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장폴 벨몽도가 연기한 남주인공은 엄청난 양의 다이너마이트를 머리에 두르고 시야가 완전히 가려진 상태에서 심지에 불을 붙인다. 불 붙은 심지가 타는 소리를 들은 그는 자신의 행위를 바로 후회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카메라는 폭파 장면을 멀리에서 비추고 이윽고 화면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패닝해 ‘La mer(바다)’를 비추며 영화는 끝이 난다.

장뤼크 고다르는 영화 〈JLG/JLG: Self-Portrait in December〉(1994)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남긴 적이 있다. “인생은 죽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며 이 영화가 나의 최후의 심판이 될 것이다.” 2004년 장뤼크 고다르는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에 1968년 이후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갖도록 다소 사기적인 방식으로 자살을 시도했다”고 고백했으며, 프랑스 문화 잡지 〈레 쟁로큅티블〉과 진행한 인터뷰에선 “여러 번 자살을 생각했지만 두려움 때문에 망설였다”고도 했다. 2014년 스위스 국영 방송인 RTS와의 인터뷰에서 타인의 도움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장뤼크 고다르는 에둘러 “그렇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인생을 죽음의 장애물이라 말했던 장뤼크 고다르지만 그는 비판 없이 살아가는 무기력한 삶을 다그쳤다. 그는 “대다수의 사람이 삶을 살아갈 뿐 그것을 상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언급에 대한 거울 이미지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상상하기만 할 뿐 그것을 실행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장뤼크 고다르가 조력 자살을 선택한 사실이 알려진 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조력 자살 합법화 가능성 모색을 포함하는 임종 옵션에 대한 전국적인 토론을 약속했다. 여기에는 의료계 및 국회의원과의 지역 토론, 협의가 포함된다. 2016년 프랑스 법률에 따르면 의사는 죽음이 임박한 말기 환자에게 연명 치료를 멈추고 사망하기 전까지 수면 유도제를 투여할 수 있지만 조력 자살은 허용하지 않는다. 최근 프랑스 국가자문윤리위원회(National Consultative Ethics Committee)는 ‘적극적 임종 지원’이 ‘특정 엄격한 조건 아래’ 프랑스에서 적용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이후 처음으로 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치사량의 약물을 스스로 주입하는 조력 자살은 스위스를 포함한 10개국에서 허용된다. 조력 자살은 의식이 없는 코마 상태의 환자를 가족의 의지 또는 의학적 판단에 따라 사망케 하는 안락사와는 구분되며, 의료 전문가가 직접 약물을 투여하는 안락사는 현재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캐나다, 콜롬비아에서 특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합법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끝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은 장애물에 직면한다. 조력 자살을 허용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 옵션을 불치병이 있는 성인으로 제한하지만 네덜란드와 벨기에만이 18세 미만의 사람들에게도 ‘죽을 권리’를 허용하고 있다.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을 운용하는 단체는 2곳이 대표적이다. 1982년 설립된 ‘엑시트(Exit)’는 스위스 국민과 영주권자에 한해 조력 자살을 시행한다. 반면 ‘디그니타스(Dignitas)’는 조력 자살이 금지된 나라에서 찾아오는 자살 관광객들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그니타스가 어떤 방식으로 외국인에게 조력 자살을 시도하는 법적 권리를 취득할 수 있었는지는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디그니타스를 찾는 사람들은 때론 가족들로부터도 자유로운 완전히 개인적이고도 은밀한 죽음을 요구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업체와 연관된 몇몇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해 생을 마감한 이들의 소지품을 빼돌려 벼룩시장에 내다 팔다 적발된 적이 있다. 또 영국의 한 타블로이드 신문사는 사설 잠수부를 고용해 취리히 호수 바닥을 탐색, 실제로 무단 투기된 것으로 보이는 유골함을 찾아내 크게 보도한 적도 있다.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벡의 작품 〈지도와 영토〉(2010)는 실재하는 디그니타스를 소설로 끌어와 현실의 가십과 버무림으로써 소설과 현실을 서로 헷갈리게 만드는 일종의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제드’는 자신의 아버지가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한 사실(디그니타스라고 직접 명시한다)을 발견하고 이 시설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본다. 그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정보는 환경보호 단체인 그린피스가 디그니타스의 불법적인 유골함 투기를 공개적으로 질타한 내용뿐이라고 묘사되는데, 이 공개 항의 서한에 따르면 디그니타스는 이곳에서 자살한 사람들의 유골 (대부분은 스위스를 방문한 자살 관광객이라고 묘사)을 취리히 호수에 불법적으로 투기했고 이 유골함이 생태계 교란종인 브라질 잉어의 확산을 촉진해 지역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는바 유골함 투기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디그니타스가 내세우는 것은 ‘(고통이 없는) 존엄한 죽음’이며, 디그니타스와 엑시트 두 단체 모두 펜토바르비탈이라는 약물을 경구 투여하도록 권유한다. 약물은 신청인이 직접 투약해야 하며 엑시트의 경우 이 과정은 사후에 있을지도 모를 법적 분쟁을 방지코자 전부 비디오로 기록된다. 그러니까 의식이 혼미하거나 자율적 의사가 확실하지 않은 신청인은 원칙적으로 시술이 불가하다. 하지만 원칙과 범위가 확실한 엑시트에 비해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디그니타스는 스위스 자국 법률의 적용 자체가 불가능해 여러 가지 추측과 논란을 야기해왔다. 무엇보다 디그니타스 홍보 문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고통 없는 죽음’도 확인이 불가능한 사항이라는 점에서 디그니타스를 둘러싼 의구심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통계가 불확실한 디그니타스를 제외하면 엑시트에선 대략 하루에 4명 정도가 조력 자살을 통해 생을 마감한다. 2022년 5월 스위스 의학 협회는 조력 자살에 대한 조건을 강화했다. 이제 의사들은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사람과 최소 2주 간격으로 최소 두 번의 면담을 실시해야 하며, 이 면담에서 죽음을 호소하는 사람은 자신의 고통이 견딜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을 증명해야 한다. 장뤼크 고다르 사망 소식이 알려진 이후 애도 행렬과 함께 그의 조력 자살을 둘러싼 무성한 소문도 줄을 이었다. 장뤼크 고다르의 죽음이 그 스스로가 치밀하게 기획해 실행에 옮긴 어떤 영화적인 사건이 아니냐는 그런 추측들. 하지만 장뤼크 고다르는 치료 불가능한 병으로 고통받지 않았고 그로 인해 죽음을 결심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삶의 고단한 실존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고 고백한 것일 뿐. 장뤼크 고다르의 죽음에 숨겨진 영화 같은 사건은 없다. 살아가는 고통과 죽는 고통 중 무엇이 더 견디기 힘드냐를 묻는 장뤼크 고다르의 질문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에디터 김미나 일러스트레이터 김혜진 글 유병서(시각예술가) 디지털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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