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서 무너지는 민주주의, 고생이 많다

민주당에서 무너지는 민주주의, 고생이 많다

프레시안 2023-03-10 06:02:27 신고

3줄요약

배신자, 첩자 7적, 색출, 처단, 제거, 살생부, 내전, 반란, 훌리건, 홍위병, 폭력, 증오, 영구제명, 문자폭탄, 차마 눈 뜨고 못 볼 악질적 댓글과 문자들...

요즘 민주당을 언급하며 거론되는 표현들이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무려 80% 정도의 소속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져 부결됐음에도 지지자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소수의 이탈자마저 색출, 처단하겠다고 온 사방을 떼로 몰려다니며 공포감을 조성하고 집단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 강경파 지지자들은 상상력까지 발휘하여 자기편이 아니면 닥치는 대로 의심하고 올가미를 씌운다. 퇴임 후 경남 양산에서 농사짓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국민의힘과 내통한 '첩자 7적'에 올려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쯤 되면 도대체 어떤 정신상태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 대표가 "내부를 향한 공격이나 비난을 중단해주시길 부탁드린다"며 나서야 했으나 별무효과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현역 의원들이 이를 합리화하고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용민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지지자들의 이탈자 색출은 "매우 정당하고 정의롭다"면서 "당내 배신자들"을 색출하는 것은 "당원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각자의 양심과 상식에 따라 투표를 한 동료 의원들을 '배신자'로 못 박아버린 것이다.

참고로,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당연히 그 자유는 보호받아야 한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비이성적, 비윤리적, 반사회적인 양심을 포함해 모든 내용의 양심이 양심의 자유에 의해 보호된다"고 판례에 적시하고 있다. 그리고 양심의 자유는 침묵의 자유도 포함한다. 지금 지지자들의 사상검증과 자백강요는 헌법정신에 반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침탈행위이다.

민주당, 어쩌다 이 지경

이들 과격한 지지자들은 민주당의 오래된 문제다. 2016년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박원순 등 대선주자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자 각 지지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애정을 다른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적 비난과 모욕으로 증명하려 했다. 그 중 유명했던 쪽이 이른바 '문빠'와 '손가혁'이었다.

사실 문재인은 2016년 자신의 팬클업에 '선플운동'을 제안하기도 했고, 2017년 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지들에게 절박한 마음으로 호소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다. 이재명도 자신의 열혈 지지세력인 손가혁으로 인해 비난을 받게 되자 2017년 대선 이후 결국 손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민주당의 '고질병'이 되었다. 지난해 전당대회 당시 우상호 비대위원장이 "인신공격, 흑색선전, 계파 분열적 언어를 엄격하게 금지하겠다"면서 "특히 '수박'이라는 단어를 쓰는 분들은 가만히 안 두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나 이마저도 결국 허사가 됐다. 문재인이 퇴장하고 난 지금 과거 여러 후보들에게 분산되었던 강성 지지자들이 이재명 아래 결집한 듯하다. 당연히 당이 휘청일 수밖에 없다.

당이 이렇게 지지자들에게 끌려다니게 된 이유는 민주당 인사들이 이들을 방조하고 때로 조장한 탓이다. 의원들이 자신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이들을 도구로 활용하며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효능감을 키워줬다. 대표적 사례가 2020년 총선 당시 위성정당 창당, 2021년 서울·부산 재보궐선거 등 스스로의 약속을 뒤집어엎을 때이다. 이들이 동원되어 당헌·당규 개정을 가능케 했다.

이제 '민주당의 운명은 내가 결정한다'는 사명을 장착한 이들이 직접 플레이어로 나섰다. 과거 문자폭탄은 주로 경쟁상대나 반대파를 공격할 때 쓰였다. 그런데 최근엔 당 지도부를 향한 폭탄도 난무한다. 2021년 당 지도부가 법사위원장 자리를 (전례에 따라 야당인) 국민의힘에 배정하자 송영길 대표와 윤호중 원내대표는 문자폭탄세례를 받았다. 윤 원내대표는 '역적'이 되었다.

지금 민주당은 지지자들에게 점령당한 꼴이다. 진중권 교수는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군중은 일단 불이 붙으면 통제가 안 된다... 그들을 세뇌시켜 써먹는 이들은 결국 그 군중에 잡아먹히게 된다"며 민주당의 처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강성 지지자들에 대해 "정치 훌리건들이 그들과 다른 생각을 배격하면서 전체주의처럼 행동"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손흥민 선수에게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한 관객에게 첼시 구단은 경기장 출입 금지 처분을 내렸다"며 "당원권 박탈 등 강력한 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팬덤의 기원, 그리고 '정치 팬덤'의 문제

그렇다면 이들의 행태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화인류학자 존 스토리는 팬덤을 산업사회 대중문화의 보편적 현상으로 간주하면서 주로 무력한 계층과 종속적 사람들에게 보편적 문화 취향이라고 했다. 이들은 (팝음악이나 스포츠 등) 사회의 지배적 가치체계에서 벗어난 문화형태에 몰입한다. 즉 팬덤이란 제도적으로 공인받은 공식문화(official culture)가 아닌 그 바깥의 빈 곳을 채우는 문화인 것이다.

팬들은 자신의 상황에 맞게 새로운 문화를 생산할 뿐 아니라 이를 재가공하여 팬 공동체와 공유한다. 그런데 팬덤의 중요한 기능은 이것이 대중의 문화적 결핍(또는 외로움)을 채우는 경로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무언가에 몰입한다는 것은 결핍의 해소를 위한 노력이다. 하지만 이것이 심해지면 사생결단이 되기도 하고 또 스토킹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팬덤의 속성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의 주장에 대한 단호함이고, 이 단호함은 종종 사회적 공격성을 띠기도 한다. 팬덤은 공식문화 영역 밖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저항적이고 도전적일 수밖에 없다. 또 팬들은 자기들의 팬덤 대상이 공식문화 범주에서 평가절하되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반론에 주력하고, 반박할 사례를 긁어모아 합리화에 몰입하기도 한다. 팬덤의 또 다른 주요 속성은 대중이 누군가의 팬이 됨으로써 또래 집단이나 팬 공동체 내에서 자존심과 즐거움을 얻는 원천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팬덤 안에서 그들은 (비록 계급의 상승은 아닐지라도) 즐거움과 존중을 보상받는다.

이렇듯 팬 공동체에 들어가면 유대감, 즐거움, 자존감을 얻게 되는 동시에 공격적 성향을 띠게 된다. 지금 민주당 강경파 지지자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팝음악이나 스포츠 등 오락 팬덤과 정치 팬덤은 구분해야 한다. 오락은 감정의 영역이지만 정치는 이성의 영역이다.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 팬덤은 위험하다. 팬(fan)의 어원이 광신도(fanatic)이다.

민주주의, 민주당에서 고생이 많다

당을 접수한 듯 행동하는 이들은 지금은 아예 토벌군이 되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직접 척결하겠다고 한다. 반란(표)에 대한 보복이다. 그러나 '처벌'은 법과 규정을 따라야 한다. 보복은 사적 응징이다. 마땅히 근절되어야 한다. 자신의 언어로 설득이 안 되고 스스로 논리가 서지 않는다 해서 협박, 처단, 보복하겠다는 것은 당연히 민주주의에 반한다.

특히 처단, 척결을 주장하는 이들은 상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169명의 국회의원이 있는데 왜 획일적 사상과 단일한 양심을 강요하는가. 거기에서 벗어나면 배신자인가? 전체주의적 사고다. 나만 옳다는 생각이다. 박정희 시대에 보던 풍경이다.

이제 민주당 의원들은 국민 눈치가 아닌, 이른바 '개딸'들의 눈치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솔직히 이야기해보자. 많은 친명계 의원들은 이탈표를 던진 비명계 의원들에 대해 '공천 때문'이라고 폄하한다. 묻고 싶다. 그 친명계 의원들이 '이재명을 지키자'라고 외치는 것 역시 공천 때문 아닌가?

민주당, 이제는 판단해야

민주당(지지자들)이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다. 민주당 강경파 지지자들을 지칭하는 '훌리건'은 원래 영국 프로축구 팬에서 유래된 단어다. 1970~80년대 영국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양산된 도시의 젊은 남성 실직자들과 노동자은 팀에 대한 충성을 앞세워 원정경기까지 쫓아가 난동을 부렸고 유혈사태까지 빈번했다. 이들은 영국축구, 아니 영국의 골칫거리였다. 당시 영국축구를 묘사하자면 "슬럼경기장에서, 슬럼사람들이 관전하는, 슬럼경기"였다. 결과는? 당연히 중산층이 외면하게 됐고, 영국 프로축구는 유럽에서도 3류 리그로 추락했다.

그런 영국 프로축구가 최고의 명품 '프리미어리그'로 새롭게 태어난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영국 정부는 대대적인 훌리건과의 전쟁에 나섰다. 이들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중산층이 다시 경기장을 찾을 수 있었다. 동시에 진행된 구단의 노력은 혁신적이었다. 이제까지 팀에 대한 충성심을 면죄부 삼아 폭력을 일삼고 구단을 망치는 '팬'과 과감하게 결별하고 구단의 경기를 즐기고 응원해줄 '고객(customer)'을 선택한 것이다. 이를 위해 경기장 폭력의 시발점이 되었던 입석공간을 없애고 이를 지정좌석으로 채웠다.

또다른 전략은 '중산층' 여성과 아이들이 찾을 수 있는 경기장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가족마케팅이다. 그 핵심은 바로 안전과 다양한 상품이었다. 결국 프로구단이었음에도 생존을 위해 팬과 결별하는 과감한 결정, 그리고 중산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지속적 노력이 영국 프로축구를 세계 최고의 '프리미어리그'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오래 전 상황파악이 끝났다. 강성 지지자들을 충분히 이용할 만큼 이용했고 이들에게 끌려다닌지 오래 됐다. 이젠 결정을 해야 할 시간이다.

하나 더. 유명 연예인들이 경호원을 고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이상 괴한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팬, 조심해야 한다.

▲이재명 지지자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민주당 첩자 '7적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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