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천년 세월을 품은 달마고도(達摩古道)

[걷고 싶은 길] 천년 세월을 품은 달마고도(達摩古道)

연합뉴스 2023-03-10 08:00:21 신고

3줄요약

남도 소금강 달마산의 18㎞ 둘레길

기암괴석이 장관인 달마산[사진/조보희 기자]

기암괴석이 장관인 달마산[사진/조보희 기자]

(해남=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전라남도 해남, 한반도 땅끝에 있는 달마산(498.8m)에는 보물이 세 개 있다. 공룡 등뼈처럼 들쑥날쑥 솟은 바위 봉우리들이 수려한 달마산 자체가 그 하나이고, 구도의 길에 견줄 만한 달마고도가 둘, 불교 남방 전래설을 뒷받침하는 사찰인 미황사가 셋이다.

한반도 끄트머리를 귀하게 장식하는 세 보석은 모두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지녔다. 달마고도를 걷는 것은 이 보배들이 주는 기쁨을 한꺼번에 누리는 길이다.

◇ 자연을 소중히 여겨 복원한 옛길…"나무 데크가 없어요"

달마고도는 달마산 7부 능선을 한 바퀴 도는 길이다. 총 17.74㎞에 이른다. 고려 시대 달마산에 있던 12개 암자 터를 이은 '수행의 길'이다. 인도 불교가 해로를 통해 들어온 자취가 서린 '전래의 길'이며, 땅끝마을 사람들이 장에 갈 때 걸었던 '삶의 길'이기도 하다.

옛길을 다듬고, 길이 끊어진 곳에는 새 길을 만들어 이은 뒤 남도 대표 둘레길로 지난 2017년 선보였다.

산세가 아름답지만 험한 달마산에는 안전사고가 더러 발생한다. 둘레길을 조성한 데는 등산객들이 험준한 바위를 타지 않더라도 산의 멋진 풍광을 즐길 수 있게 하자는 뜻이 있었다. 달마산 경관 보호의 목적도 있었다. 바위가 많은 위험 구간에 쇠 막대기를 박아 나무 계단과 데크 길을 만드는 것은 흔하다.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케이블카나 모노레일을 설치하기도 한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은 길을 만들어 탐방객들로부터 사랑받게 함으로써 훼손과 개발을 막아보려는 의지가 이 길에 담겨 있다. 그래서 달마고도에는 나무 데크 길이 없다. 길을 만들 때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려고 중장비를 쓰지 않았고 삽, 호미, 곡괭이를 사용해 사람 손으로 길을 꼼꼼하게 다듬었다.

현대 도시인 중에는 원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어지럼증 환자가 적지 않다. 집, 사무실 등 좁은 공간에서 주로 생활하기 때문에 평형감각이 둔화한 탓이라는 의학적 설명을 들은 적 있다. 산에 가더라도 잘 정비된 나무 데크 길을 걷곤 하므로 평형감각은 쉽게 길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달마고도에 서면 한쪽으로는 바다가 아스라이, 다른 쪽으로는 바위 절벽이 아찔하게 펼쳐진다. 한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울퉁불퉁한 흙길인 달마고도에서 잃어버린 옛 감각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경사지에 이어진 등산로[사진/조보희 기자]

경사지에 이어진 등산로[사진/조보희 기자]

◇ 18㎞ 둘레길…"완주해도 피곤하지 않아요"

달마고도가 조성된 지 5년 남짓 지났다. 그 새 이 길의 매력에 빠진 마니아들이 적잖이 생겼다. 그만큼 걷는 즐거움이 클 뿐 아니라 주변 경치가 다채롭다. 하루에 걷기에는 벅찬 거리인데도 완주하고 나면 몸이 괴롭거나 피곤하지 않다. 오히려 상쾌해진다. 박미례 전라남도 문화관광해설사는 "달마산의 좋은 기운을 받아서 그렇다"며 웃었다.

달마고도는 미황사에서 시작해 미황사에서 끝난다. 1코스부터 4코스까지 4개 코스가 있다. 1코스부터 차례로 출가길(2.71㎞), 수행길(4.37㎞), 고행길(5.63㎞), 해탈길(5.03㎞)이라 부르기도 한다.

미황사 왼쪽으로 난 숲길로 들어서면 1코스가 시작된다. 큰바람재까지 이어지는 1코스에서는 너덜겅 바위 지대, 삼나무 숲이 눈길을 사로잡고, 다도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큰바람재에서 노지랑길에 이르는 2코스에는 수사나무, 사스레피나무, 음나무, 꾸지뽕나무 등이 군락을 이룬다.

절벽 위에 자리한 도솔암[사진/조보희 기자]

절벽 위에 자리한 도솔암[사진/조보희 기자]

2코스에서는 달마산 동쪽 마을과 해안이 내려다보인다. 2코스 끝자락에 서면 남해와 서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남 앞바다는 남해와 서해의 경계이다.

3코스는 노지랑골 사거리에서 몰고리재까지 13개 모퉁이를 넘어가는 길이다. 조릿대군락지, 암석지 등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미황사로 돌아오는 길인 4코스는 전 구간이 땅끝 천년 숲길이다. 대낮에도 속이 컴컴한 삼나무 숲, 편백 숲이 울창하다.

둘레길을 완주할 만큼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탐방객들에게 인기 있는 길은 1코스와 4코스이다. 원하는 만큼 걷다가 출발점인 미황사로 돌아오면 된다. 기암괴석과 절벽 풍광이 압도적인 도솔암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3코스와 4코스에 있다. 정상인 불썬봉(달마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2코스 미라골잔등과 미황사에서 시작한다.

철분과 유리 성분이 많은 거대한 규암이 풍화작용에 의해 무너지고 부서져 생긴 너덜겅이 장관을 이루는 것도 달마산의 특징이다. 너덜겅은 20곳에 이르며 이 중 6곳은 규모가 커 신비감을 자아낸다.

달마고도에는 흘러내린 낙석이 모여있는 너덜겅이 여러 곳 있다.[사진/조보희 기자]

달마고도에는 흘러내린 낙석이 모여있는 너덜겅이 여러 곳 있다.[사진/조보희 기자]

◇ 달마대사의 법신이 상주할 만한 달마산

달마는 백두대간이 지리산을 넘어 월출산을 지나 해남 땅끝 직전에서 힘차게 솟아오른 산이다. 북쪽에서부터 관음봉(434m), 불썬봉(498m), 떡봉(422m), 도솔봉(418m)이 남북으로 12㎞가량 길게 늘어서 있다.

그리 높지 않지만, 산세가 웅장해 남쪽의 금강산으로 불렸다. 부처 형상을 한 바위가 1만 개에 이른다는 명산이다. 탁월한 산세로 인해 고려 시대 이전부터 중국에 알려졌으며, 중국인들은 달마대사가 머물 만한 곳이라며 부러워했다고 한다. 달마대사는 인도 출신으로, 중국 선종 불교를 창시했다.

선종은 한국, 베트남, 일본 등으로 전파됐는데 이 나라 중 유일하게 한국에만 달마대사의 이름을 딴 산이 있다.

백두대간이 바다로 잦아들기 직전에 만들어낸 남도의 산들은 너른 들판 가운데 홀로 불쑥 솟아 이국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영암 월출산, 달마산, 강진 주작산과 덕룡산이 대표적이다. 첩첩으로 이어진 산군에서 느끼는 장엄함과는 또 다른 숭고함을 불러일으킨다.

등산하자면 해안과 비슷하게 낮은 지대에서 출발해 긴 거리의 오르막을 올라야 하므로 절대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산들이다. 산꾼들은 남도의 산들이 주는 매력이 특별하다고 말한다. 산을 오르는 재미가 있고, 다도해 조망을 즐길 수 있으며, '엉덩이로 간다'는 바위산행으로 인해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바위를 오를 때는 안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흘러내린 낙석이 산을 이루고 있다.[사진/조보희 기자]

흘러내린 낙석이 산을 이루고 있다.[사진/조보희 기자]

◇ 인도 불교를 받아들인 미황사

미황사는 한반도 육지 최남단 사찰이다. 한국에 불교는 주로 중국을 통해 도입됐다. 그러나 바닷길을 통해 인도에서 직접 전래하기도 했을 것이라는 학설을 뒷받침하는 곳이 미황사이다.

미황사 사적비에 나타난 창건 설화를 보면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석선(石船)이 달마산 아래 포구에 닿는다. 배 안에는 금인(金人) 상이 노를 잡고 서 있었고 화엄경, 법화경 등 불경이 실려 있었다. 그날 밤 미황사 창건자인 의조 화상의 꿈에 금인이 나타나 "나는 본래 우전국(인도) 왕으로, 여러 나라를 다니며 경상(經像)을 모실 곳을 구하고 있는데, 이곳에 이르러 산 정상을 바라보니 1만 불이 나타나므로 여기에 왔다"고 말한다.

해체 복원공사 전의 미황사 대웅보전 모습[사진/조보희 기자]

해체 복원공사 전의 미황사 대웅보전 모습[사진/조보희 기자]

배 안의 흑석에서 나타난 검은 소의 등에 경전을 싣고 가던 중 소가 '미'하고 울음소리를 내며 쓰러진 자리에 세운 절이 미황사이다. '미'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황'은 금인에게서 뿜어져 나온 눈부신 금빛을 뜻한다. 빛바랜 단청과 고색창연한 건축미로 유명한 대웅전은 현재 해체복원 불사가 진행 중이다.

매월당 김시습은 동해 일출은 낙산사, 서해 일몰은 미황사라고 했다. 수도승처럼 말없이 선 바위 봉우리들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는 긴 여정을 마친 여행자에게 황홀함과 아쉬움으로 지워지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3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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