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_Pub: 포스트휴머니즘의 세 흐름] 인간 중심 사고의 대전환…비인간 존재의 시대가 온다

[Today_Pub: 포스트휴머니즘의 세 흐름] 인간 중심 사고의 대전환…비인간 존재의 시대가 온다

투데이신문 2023-03-14 18:50:2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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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후 투데이신문과 인터뷰 중인 이동신 교수. ⓒ투데이신문
지난 7일 오후 투데이신문과 인터뷰 중인 이동신 교수.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정인지 기자】 알파고와 챗GPT 등 인공지능의 발달은 인간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소유의 개념이었던 '애완동물'이 공생하는 '반려동물'이 되면서 남긴 시사점은 뭘까. 연일 한계를 시험하는 기후위기 속에서 자원은 어떻게 보존할 수 있을까.

인간중심주의를 고집하던 우리는 이러한 곤경과 시련에 부딪치면서, 종중심주의를 탈피하고 인간만의 관점에서 벗어나 비인간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포스트휴머니즘’을 통해서 말이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이동신 교수는 포스트휴머니즘은 “기존의 인간중심적 인간 정체성을 해체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하며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캐서린 헤일스의 ‘기술’, 캐리 울프의 ‘동물’, 그레이엄 하먼의 ‘사물’의 관점에서 각각 몸부림, 상실감, 놀라움이라는 정서(정동)로 정리한다. 

이동신 교수는 이러한 내용이 담긴 도서 <포스트휴머니즘의 세 흐름> 을 얼마 전 출간했다. 인문학자인 그는 인간에 대한 학문이라는 인문학이 비인간 존재와 인간의 관계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으로 로봇 뿐 아니라 동물과 사물로 관심을 넓혀가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포스트휴머니스트가 됐다. 2019년부터는 ‘인간-동물연구 네트워크’를 구성해 사회학자, 수의학자, 인류학자들과 함께 인간-동물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신간 <포스트휴머니즘의 세 흐름> 으로 인간과 기술, 동물, 사물의 관계에 주목한 이동신 교수와 만나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읽어봤다.

휴머니즘 너머의 포스트휴머니즘

Q. 인간주의·인본주의라고도 부르는 휴머니즘(humanism) 담론은 탈(脫)휴머니즘, 트랜스(trans)휴머니즘, 포스트(post)휴머니즘 등으로 개진되고 있습니다. 각각의 관계와 흐름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요.

기본적으로 휴머니즘을 어떤 식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포스트’나 ‘탈’ 내에도 다양한 입장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탈휴머니즘 내에도 휴머니즘을 역사적 단계로 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발전적 흐름이 당연하다는 입장과 휴머니즘을 문제가 많은 담론으로 보고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입장이 공존합니다.

이처럼 혼재된 상황이지만, 제 입장에서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과 트랜스휴머니즘의 차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둘 다 휴머니즘 혹은 인간 정체성 너머를 지향하고 있지만,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상호관계와 공생 가능성을 논의의 필수 전제로 삼고 있습니다.

반면 트랜스휴머니즘은 비인간 존재나 혹은 인간이 그런 존재와 공유하는 생물학적 조건을 극복해야 할 한계로 보고, 첨단 과학기술 등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리라 주장합니다.

 

휴머니즘이 표방하는 독립적 인간 개념은 비인간, 특히 동물과의 자의적 구분을 통해서 만들어졌고, 따라서 그 개념은 동물로서의 인간을 부정한 결과일 뿐이다. ‘인간’의 독립이란 인간은 동물이라는 불변의 사실을 감춘 환상이다.

-126쪽-

Q. 그렇다면 교수님이 정의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은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포스트휴머니즘을 논의하고 정의하지만 제가 정의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를 수정해 궁극적으로는 기존의 인간중심적 인간 정체성을 해체하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비인간 존재의 가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문명과 사회를 재편해 공생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사실 교수님은 영문학 전공자인데,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철학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박사논문을 시작하면서 문학, 특히 문학비평에 대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문학적이거나 재현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좀 더 현실과 미래를 담을 수 있는 틀을 찾게 됐고, 자연스럽게 당시 등장했던 포스트휴머니즘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연구를 하면서는 인간에 대한 학문이라는 인문학이 비인간 존재와 인간의 관계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 굳어지면서 사이보그나 로봇뿐만 아니라 동물과 사물로 관심을 넓혀가게 되었습니다.

Q. 해당 담론의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의견들이 가지를 뻗어가고 있다고요.

국내 포스트휴머니즘 논의는 과학기술에 집중돼 있습니다. 예컨대 알파고나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이야기가 많죠. 그러다보니 포스트휴머니즘이 기존에 갖고 있던 비판적인 입장을 다루기보다는 인간이 기술을 통해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나 변화에 한정해 논의되는 것 같아요. 여기서 조금 더 비판적인 자세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인간(휴먼)’에 집중하다 보니 동물과 사물 얘기가 제외되곤 해요. 요즘 동물권이나 윤리 이야기는 많지만 포스트휴머니즘은 그것과는 결이 다른 동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환경권이나 환경론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포스트휴머니즘 차원에서 재논의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Q. <포스트휴머니즘의 세 흐름> 이라는 제목처럼 포스트휴머니즘을 세 연구자 ‘캐서린 헤일스’, ‘캐리 울프’, ‘그레이엄 하먼’으로 나눠 서술했습니다. 이들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헤일스는 포스트휴머니즘을 학문적 영역으로 정립한 학자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세 사람에 주목한 이유는 그들이 주로 논의를 진행하는 세 영역이 포스트휴머니즘에 중요하다고 판단해서입니다. 즉 기술, 동물, 사물이죠.

헤일스가 첫 영역에서 활동한다면, 울프는 동물을 통해 포스트휴머니즘 논의를 선도한 학자입니다. 하먼은 스스로를 포스트휴머니스트라고 하지는 않지만, 사물의 중요성을 사물 자체에서 찾는 사람이기에 포스트휴머니즘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주목했습니다.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

Q. 헤일스의 포스트휴먼은 ‘디지털 환경에서 몸으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한 바 있습니다.

디지털 환경이 되면서 사람들은 몸을 없애고 컴퓨터에 정신을 옮겨두는 것만으로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얘기해요. 몸을 기계로 바꾸거나 영생할 수 있게 하면 이전에 몸에 갇혀 있던 인간들이 이제 몸에서 벗어나서 더 오래 살고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그런데 헤일스가 보기에는 그건 잘못된 길입니다. 사람의 몸이라는 게 원래 일정한 수명을 살 수 밖에 없잖아요. 몸을 비하하고 정신을 우대하는 서구의 전통이 포스트휴먼 시대에 극대화되는 것이 헤일스의 우려입니다. 게다가 몸을 컴퓨터로 대체한다면 컴퓨터가 다시 우리 ‘몸’이 되는 거고요.

갖고 태어난 몸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포함한 물질들을 모두 다 몸이라고 얘기하면서 도래할 새 시대에서도 몸을 비하할 것이 아니라 더욱 몸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야 한다는 거죠.

 울프에게 동물에 대한 윤리적 관심은 타인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동물로서의 인간 본인에 대한 것이다. 

 울프는 “종 중심주의를 대면하고 포스트휴머니스트적인 주체 이론을 고안해야 하는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절박함은 동물을 좋아하는지 아닌지와 전혀 상관없다”고 말한다.

 “동물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상관없이” 꼭 해야만 하는 논의, 하지만 결국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적용되는 논의가 바로 울프가 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128쪽-

 

Q. 울프는 인간과 동물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며 인간 개념이 종 중심주의의 결과라고 비판했습니다. 기존의 동물권 논의와 어떻게 다른지.

울프의 포스트휴머니즘이 기존의 동물권 논의와 다른 점은 후자가 여전히 인간중심주의적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즉, 동물을 보호하자는 입장은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고, 반면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입장은 인간이 가진 권리를 동물에게 확장하는 것이라고 울프는 비판합니다.

결과적으로 인간과 동물 사이의 이분법적 위계질서는 흔들리지 않기에 인간중심주의는 그대로인 것이죠. 울프의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동물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기에, 그런 이분법적 구도는 허상이라고 지적하면서 정체성 자체를 해체하는 작업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언제나 이미’ 포스트휴먼이라는 입장이 가능해지죠.

Q. 2019년부터 사회학자, 수의학자, 인류학자 등과 함께 ‘인간-동물연구 네트워크’를 통해 인간-동물 관계를 연구하고 있는데 전문가들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일화가 있다면.

같이 하는 분 중에 곰 생추어리(Sanctuary, 피난처)를 만드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 얘기로는 웅담 채취를 위해 사육된 반달곰들이 웅담 금지가 되며 갈 곳 없이 남아있다고 하셨어요. 사육하던 사람들이 곰들을 팔수도 없었고요.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병들거나 굶어 죽는 경우가 많고 살아있어도 최악의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곰들이 그냥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생추어리’입니다. 하여튼 이 분이 곰 생추어리를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하시는데 우리나라는 공간도 부족한데다 지원도 되지 않아 힘들어 하시더군요. 

Q. 인간과 동물 사이를 고민하는 <관계와 경계> 라는 책을 공동 집필했는데.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동물과 가까운 게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가까워야 관심도 갖고 보호도, 보존도 할 수 있다고 얘기하곤 하죠. 그런데 인간과 동물 사이가 너무 가까워져서 동물이 피해를 보기도 해요.

장기적으로 보면 동물이나 인간이 거리를 두고 살아왔던 존재거든요. 어느 순간 너무 관심을 위주로 동물을 이야기하다 보니 소중한 동물과 소중하지 않은 동물을 구분하게 되었어요. 장기적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관계는 ‘무관심의 관계’가 아닐까 합니다. 거리의 의미가 아니라 심리적 사이로 말이죠. 심리적으로 ‘무관심해도 괜찮은,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Q. 지켜주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가 가장 건강하겠네요. 그런데 지금 공존하고 있는 동물들은 대부분 인간에 길들여진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선택적인 동물들만 이어져 나가게 되겠네요.

지금의 지구상에 남은 거의 90% 동물들은 길들여진 상태죠. 반려동물은 물론이고 인간과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가축이나,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이요. 그런데 길들여지기 시작하면 자생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동물을 보존하는 운동들이 많은데 특정 동물만 보존하자는 것은 사실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인간이 친밀감을 느낀다는 이유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북극곰을 예로 들자면 북극곰 보존 캠페인을 할 때 우리는 아기 곰을 돌본다거나 하는 귀여운 모습을 강조하곤 하죠.

그렇게 귀여운 모습에만 노출되다 보면 사람들은 사냥을 하거나 자기 새끼를 해하는 북극곰의 야생적이고 자연적인 모습을 볼 때 ‘이제 구하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그런데 그건 잘못된 접근인거죠. 곰이 내가 좋아하는 어떤 행동을 하면 구하고, 그렇지 않은 행동을 하면 구하지 않겠다는 것이요.

우리가 생태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동물을 구하는 일은 ‘좋은 일’이라는 생각에 안 좋은 영향이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넓은 시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Q. 신사물론에 서 있는 하먼은 “모든 객체는 요소로부터 나타나고 요소로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요소’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인간 뿐 아니라 다른 동물·사물끼리 어떤 식으로 서로를 알아보잖아요. 알아보게 하는 것이 바로 ‘요소’입니다. 예컨대 책상이라는 사물이 있을 때 흰색이고 네모나다는 요소가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이게 책상을 완전히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냥 ‘하얀 책상 알지’라고 하지만 사실은 하얗다는 색상으로 그 책상을 설명할 수는 없는 거죠.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저 사람 알아’라고 하지만 그 사람의 키나 학력과 같은 요소를 아는 거죠. 그걸 합해도 그 사람을 모르잖아요.

Q. 단순 집합이 아니니 그렇겠어요.

그런 것들이 요소와 객체의 관계죠. 요소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종의 현상인데 그 현상을 가지고 사물의 진짜 존재가 어떤 건지는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Q. 하먼은 ‘인간도 도구 존재’라는 하이데거의 논의를 확장해 “모든 사물이 존재론적으로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그 가능성을 드러내는 일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에 대한 ‘놀라움’을 되찾고자 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객체지향철학’의 배경과 포스트휴머니즘 관점에서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하먼은 하이데거 철학에서 “도구 논의가 현존재에 대한 논의보다 더 중심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객체지향철학을 제안합니다. 사물이 인간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죠. 중요한 점은 사물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21세기 초반에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하먼이 <사변적 실재론> 에서 설명하듯이, ‘메이야수’나 ‘브라시에’ 등이 다른 맥락에서 인간중심주의적 사물 인식을 비판하였습니다. 철학뿐만 아니라 문학, 예술, 정치 등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고, 이 모두가 하먼의 철학에 ‘신사물론’(new materialisms)라는 큰 배경을 제공했습니다.

비록 하먼 본인은 포스트휴머니스트라고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포스트휴머니즘에게 그의 철학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난 인간-비인간 관계의 필요성을 비인간, 즉 사물을 통해서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헤일스나 울프는 같은 필요성을 역설하지만 인간중심주의의 비판을 통해, 즉 인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얘기합니다.

왼쪽부터 캐서린 헤일스, 캐리 울프, 그레이엄 하먼. [사진제공=도서출판 갈무리]
왼쪽부터 캐서린 헤일스, 캐리 울프, 그레이엄 하먼. [사진제공=도서출판 갈무리]

Q. 세 흐름에 해당하는 헤일스의 과학기술, 하먼의 동물, 하먼의 사물 영역을 살펴봤습니다. 이러한 세 흐름의 공통점과 차이점 등을 비교해주신다면요.

공통점은 분명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고, 그러한 비판을 바탕으로 기존의 인간개념을 해체하고 비인간존재와 다른 관계를 맺어야한다는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기술, 동물, 사물은 모두 인간이 스스로를 개념화하는데 주로 의존했던 영역이고, 따라서 이 영역들에서 인간중심주의가 가장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포스트휴머니즘의 세 흐름이 이 영역들로부터 흐른다는 사실도 당연해보입니다.

차이점은 방법론적 차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인간이 각 영역에서 자신을 그리고 비인간존재를 대하는 방식이 다르게 발달했다는 점입니다. 과학기술이 인간 자체의 능력에 주로 집중한다면, 동물 영역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더 집중하게 되죠.

따라서 전자는 정체성의 문제, 그리고 후자는 윤리의 문제로 포스트휴머니즘을 전개하는 경향을 갖습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Q. 교수님은 이 세가지 흐름을 관통하는 것은 몸부림, 상실감, 놀라움이라는 정서(정동)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동물 네트워크’의 연구에 참여한 점이 작용한 것 아닌가 싶은데요.

네 맞습니다. 물론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정서는 항상 중요한 관심사였죠. 특히 정서가 문화적, 정치적,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고, 그런 정서가 문학에 어떻게 반영됐고 동시에 문학이 그런 정서의 형성과 변화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인간-동물 네트워크에 참여하면서 동물로 정서라는 주제를 확장하는 기회를 가진 것은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정서의 구조에 동물이 이용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동물이라는 특별한 존재로 인해 그 구조가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자신의 소유물로서 동물을 키운다고 해서 동물이 소유물로만 느껴지지는 않죠. 구조가 요구하는 정서와 동물이라는 존재가 요구하는 정서가 공존하는 것입니다.

이동신 교수. ⓒ투데이신문<br>
이동신 교수. ⓒ투데이신문

일상적 삶 돌아보면 포스트휴먼인 자신 발견할 것 

Q. 포스트휴머니즘 관점에서 보면 불쾌한 골짜기, 동물권, 인류세 등을 인간의 이율배반적인 모습 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포스트휴머니즘을 현 사회에 대입해 이야기 한다면.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들이 공통적으로 알리는 사실은 인류를 위한 발전이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복기하고 성찰하는 작업은 이 현실적인 문제에 즉각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작업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그런 해법이 그저 일시적인 미봉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인류를 위한다고 했을 때 한 번도 인류 전체가 포함된 적이 없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하지만 포스트휴머니즘은 인류 전체를 위한다고 해도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지구에서 인류만 사는 것도 아니고 사실 인류가 살아가는 이유는 비인간 존재가 있기 때문이기에, 인류만을 위한다는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Q. 대부분의 공상 과학 소설이나 영화(SF·Science Fiction)에서는 암울한 미래(디스토피아·Dystopia)를 보여줍니다. 인간은 AI의 노예이거나 환경오염으로 멸종위기에 처하기도 하죠. 포스트휴먼의 미래에는 디스토피아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유토피아(Utopia·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온전한 사회)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포스트휴머니즘의 시각에서 다시 질문을 던지자면 누구의 입장에서 디스토피아고 누구의 입장에서 유토피아인지 묻게 됩니다. SF 소설이나 영화에서 제시하는 이면에는 ‘인간의 입장에서’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과다한 위기의식이나 안정감을 조장하는 면도 있고요.

사실 미래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갈리지는 않을 겁니다. 인간에게 안 좋았던 이전의 시절이 사실 어떤 비인간 존재에게는 디스토피아였을 겁니다. 미래도 마찬가지겠죠.

Q. 개인의 역사에서 포스트휴머니즘 시각을 가지게 된 시점 전후로 변화가 있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제가 문학하는 사람인지라 먼저 책을 읽는 방식이 되는 것 같아요. 전에는 책을 읽으면 사람에 집중하게 되곤 했습니다. 인물과 그가 접하는 세상, 혹은 경험에 집중해서 읽고 분석했었죠.

그런데 요새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 사물이나 동물, 날씨도 되고요. 이런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학자로 말하자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방식이 바뀌었고 개인으로 말하자면 주변에 관심을 더 많이 갖게 된 것을 들겠습니다.

Q. 인터뷰 초반의 “인간만의 문제에서 벗어나 비인간적인 문제도 다뤄야 인문학”이라는 말씀과 이어지네요. 그럼 독자들에게 있어 ‘포스트휴머니스트’가 되는 첫 발걸음에 대해 조언해주신다면.

자기 삶을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의미있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내가 쓰는 도구나 의존하는 기계, 보고 즐기는 동물과 식물들이 자기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따져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핸드폰과 자신의 관계로 예를 들자면 핸드폰이 없으면 사람들이 되게 불안해하잖아요. 그 자체가 포스트휴먼의 불안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인간이 갖고 있는 어떤 생각이나 몸만으로는 살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죠. 한편으로는 그렇게 중요한, 말하자면 친구가 핸드폰을 1년 만에 바꾸고 하는 것은 잘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친구를 1년 만에 한 번씩 바꾸나요.

Q. 이 책을 통해 그 동안의 인간중심주의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도래’할 포스트휴머니즘의 미래에 종(種)과 성질을 초월해 동물과 사물 모두가 이해 가능한 메시지를 남긴다면.

인간인 제가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를 남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이해할 필요가 없을 메시지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 적절해보입니다. 비인간존재가 인간의 행동과 존재에 대해 주시하고 경계할 필요가 없는 미래, 즉 이해할 메시지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지향하는 것이죠.

이동신 교수는 이날 인터뷰 장소까지 50분을 걸어왔다고 했다. 예전에는 산책을 하면 '도착지'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가면서 '보는 것'이 재밌어졌다고 했다. 목적이 경로에서 풍경으로 옮겨온 것이다. 좋은 풍경과 나쁜 풍경을 생각하던 지난 날과는 달리 “내 눈에 조금 지저분하고 안 예쁜 것 같더라도 사실은 그 자체로 뭔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돌아갈 그가 50분 동안 무얼 보게 될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녔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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