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 화두, '15분 도시'에 대해 창안자에게 직접 의미를 물었다

전 세계적 화두, '15분 도시'에 대해 창안자에게 직접 의미를 물었다

에스콰이어 2023-04-08 17:00:00 신고

3줄요약

팬데믹이 끝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프랑스 파리와 미국 포틀랜드, 콜롬비아의 보고타와 중국의 베이징까지 세계 곳곳에서 ‘15분 도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도시계획 혁신 방안’은 ‘N분 생활권 도시계획’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고, 부산광역시와 제주특별자치도는 ‘15분 도시’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이전과는 다른 도시의 풍경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15분 도시’란 대체 무엇이고, 어째서 갑자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른 것일까? ‘15분 도시’ 개념을 창안한 과학자 카를로스 모레노에게 직접 들었다. ‘15분 도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와 이를 둘러싼 오해, 그리고 유례없이 급속한 성장을 이룩한 한국에서 과연 구현이 가능할지에 대해서.

1 사람
‘15분 도시’란 시민들이 도보 또는 자전거, 즉 ‘소프트 모빌리티’를 이용해 15분 내에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도시 조직을 말한다. 문화, 의료, 교육, 복지, 여가, 업무까지 15분 이내에 해결이 가능한 공간이다. 인간과 시공간, 삶의 질, 그리고 사회적인 관계가 긴밀하게 연결돼 선순환을 이루는 구조를 추구한다. 자세히 들어가면 크로노어바니즘(crono urbanism), 크로노토피아(cronotopia), 토포필리아(topophilia)라는 세 가지 개념이 융합된 것이다. 크로노어바니즘은 도시를 단순히 공간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시공간’으로 보자는 의미다. 건축을 하거나 환경을 조성할 때 거주자의 이동 시간을 고려 대상으로 두는 것이다. 크로노토피아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 공간의 용도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같은 공간이지만 낮에는 교실로, 밤에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토포필리아는 장소에 대한 애착이다. 도시학이라고 하면 왠지 차갑고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15분 도시’ 개념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고 도시에 대한 그들의 마음이 있다. 거주민이 도시에 애착을 쌓을 수 있도록 편리와 감동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를 포괄해 나온 것이 ‘15분 도시’이고, 시민들을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동시에 환경에 최소한의 영향을 미치는 것이 ‘15분 도시’의 궁극적 목표다.

2 파리
현재 세계 곳곳에서 ‘15분 도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대표 격으로는 프랑스 파리를 들 수 있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재선에 도전한 2020년 지방선거 당시 ‘15분 도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당선 이후 지금까지 파리 시내에 전반적으로 ‘15분 도시’를 구현해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우선 파리 시내에 자전거 전용 도로가 대폭 늘어났다. 이 자전거도로에서는 이른바 스마트 모빌리티라고 불리는 전동 킥보드나 전기자전거 이용도 가능하다. 소프트 모빌리티를 통해 이동 시간을 줄인 크로노어바니즘의 일환이다. 덕분에 보행자도로와 도시 곳곳의 녹지를 넓혔다. 대신 자동차도로는 축소했다. 또 학교 운동장 등 기존 공간의 활용도를 높여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낮에는 기존의 용도대로 쓰고, 오후에는 스포츠 클럽 등 여가 활동이 가능하도록 대여하는 것이다. 덕분에 더 멀리 나가야 접할 수 있었던 서비스를 15분 내에 만나볼 수 있게 됐다. 크로노토피아의 적용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공 부동산 회사 ‘퐁시에르 드 커머스(Fonciere de Commerce)’를 통해 지역 상인들과 시민들의 직접 참여도 늘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시민들의 토포필리아를 키우는 것이다.

3 팬데믹
코로나19 기간 동안 사람들은 ‘근접성’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보게 됐다. 팬데믹은 확실히 급진적인 전환점이었다. 사람들은 갇혀 지내며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라이프스타일과 업무 방식에 도전해야만 했다. 이는 생활, 업무, 쇼핑 등 단일한 기능을 가진 넓은 공간으로 구성돼 있던 이전의 도시에 변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 이후 ‘15분 도시’라는 개념이 대중화된 건 팬데믹 같은 이 시대의 각종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팬데믹 기간 동안 UN 해비타트와 세계경제포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등에서 유연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모델로 ‘15분 도시’를 인정하며 더욱 널리 퍼지게 됐다.

4 접근성
15분 내로 특정 장소까지 이동이 가능하다는 이동성은 ‘15분 도시’의 주요 개념이 아니다.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이내 거리에 거주민들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들자는 것이 나의 아이디어였다. 도시 끝에서 끝까지 가는 데 최소한의 시간이 드는 초고속 열차를 도입하는 등 교통의 속도를 높이자는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그들의 집과 더 가깝게 두자는 의미로, 속도가 아닌 기후변화와 환경 위기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 인적·물적 흐름의 집결로 도시화가 기후변화에 미친 영향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업무지구와 거주지구를 분리한 탓에 차량으로 가득했던 이전의 도시 풍경이 열섬 현상을 가속화했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동성이 아닌 근접성에 중점을 둔 ‘15분 도시’는 이런 도시화의 부정적 영향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로에 차가 줄어들면 태양 반사도가 높으며 완전 방수가 되는 콘크리트 도로도 점차 줄어들 것이다. 자동차를 위한 공간의 축소는 도심 속 초목 지대의 확장과 연결된다. 결국 이는 탄소배출량 감소로 이어진다. 인간과 식물, 물, 그리고 공기까지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인간이 어디로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인간의 속도로 이동해도 15분 안에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15분 도시’의 골자다.

5 노동
한국의 대부분의 신도시는 베드타운이지만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업무를 제외한 의료, 교육, 여가 등을 15분 내에 누리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결국 도시 거주민들의 라이프스타일 형성에는 집과 직장 사이의 거리가 결정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재택근무다. 재택근무는 주거와 업무를 통합하는 가장 간단한 해결책으로, 개인의 이동 거리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재택근무를 하고 싶어 하거나 할 수 있지는 않다.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은 다양하다. 아주 장기적으로는 업무지구나 거주지구 등 어떤 하나의 기능이 넓은 지역에 집중되는 것을 피하는 도시계획을 세워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주거 구조를 다양화해 주거지로 이용하는 건물 내에 업무 공간을 설치하는 방안이 있다. 일종의 지역 공유 오피스를 만드는 것이다. 여러 지역에 분산된 업무 공간과 그중 가까운 오피스에 출근하는 제도를 통해 생산성을 유지하면서도 이동 거리를 줄일 수 있다. 물론 재택근무가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의견도 아직 있는 것으로 안다. 경제적, 사회적, 도시적 관점에서 각각 논의해야 할 복잡한 이야기다. ‘15분 도시’가 모든 답을 가지고 있진 않다. 우리가 집에서 더 가까운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논의의 물꼬를 터준 개념이라고 보는 게 맞다.

6 스마트 모빌리티
자전거와 스마트 모빌리티는 ‘15분 도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파리시가 ‘15분 도시’를 조성하며 자전거와 스마트 모빌리티 이용을 늘렸다고는 하나, 여전히 매일 5km 미만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변화가 드라마틱하고 아름답게 일어나지만은 않는다. 한국에서는 스마트 모빌리티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편이라고 들었다. 처음엔 파리에서도 스마트 모빌리티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았다. 대신 강력하고 정확한 제도가 자리 잡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동 킥보드의 속도를 제한하고, 정해진 구역에만 주차할 수 있게 했다. 길게 보면 장점이 훨씬 많다. 꽉 막힌 도심에서 자전거와 스마트 모빌리티를 이용하면 자동차나 대중교통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으며, 이용자는 신체 활동이 이뤄지기에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유지비가 저렴한 데다 탄소배출량도 줄어든다. 아까도 말했듯 선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다만 변화는 조금씩 느리게 이뤄진다. 아직 파리도 갈 길이 멀다.

7 백래시
서울시가 지난 8년 사이 도심 내 도로를 1차로씩 줄이고, 나머지 공간을 자전거도로와 인도로 쓸 수 있도록 도로 공사를 곳곳에서 추진하는 가운데 상당한 백래시가 있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당장의 불편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 파리에서는 센강을 따라가는 주요 도로를 자전거도로로 바꾼 공사가 엄청난 백래시를 불러온 바 있다. 도로가 줄어드니 차량 통행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시장을 향해 엄청난 항의가 쏟아졌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런 불만은 오래가지 않는다. 센강 도로 공사에 대한 비판 여론은 이제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며, 지금 해당 도로는 매일 수천 명의 자전거 이용자들로 붐빈다. 당장의 비판은 미래 세대를 위해 감수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변화를 시행하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는 내일 고통받을 것이다.

8 서울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많은 도시는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 모델을 기준 삼아 적은 공간에 많은 것을 밀어넣은 고밀도 형태로 성장해왔다. ‘15분 도시’로 재편하기에는 이용 가능한 공간이 한정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서울처럼 빠른 시간에 성장한 도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 확장된 도시도 같은 문제점을 가진다. 파리는 오래된 도시지만 서울과 마찬가지로 이미 건설된 것들이 많았고 밀도도 높았다. 하지만 ‘15분 도시’를 구현하고자 빈 공간을 만들어내려 하진 않았다. 모든 공간에는 도시의 역사가 서려 있으니까. 대신 기존 공간을 다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에는 청계천공원이 있는데, 성공적인 ‘15분 도시’ 구현의 예시 중 하나다. 자동차로 가득하던 곳을 자연과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개선해 시민들에게 돌려줬으니 말이다. 이 밖에 지상철도를 지하화한 뒤 기존의 철로를 공원으로 만든 ‘연트럴 파크’에 대해서도 들었는데, 이 역시 성공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서울은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을 형성하기 위해 기존 공간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15분 도시’를 구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 서울은 오히려 높은 밀도 덕분에 대중교통망이 매우 잘 구성돼 있다. 자동차 사용을 줄이기 쉽다는 점도 도움이 될 것이다.

9 지방
‘15분 도시’는 대도시부터 구, 마을, 이웃까지 여러 규모에서 다각도로 접근해야 하는 개념이다. 즉 서울 같은 대도시가 아닌 작은 지역에 ‘15분 도시’ 개념을 적용할 경우 대도시와는 다른 방식으로 다가가야 한다. 수도권에서 먼 지역일수록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유통 센터나 서비스가 부족하여 더 많은 조치가 필요한 까닭이다. 한국은 일자리와 인프라가 모두 서울에 위치하다 보니 젊은이들이 수도권에 몰려 인구 분포와 경제성장 모두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불균형이 심해지고 있다고 들었다. 이를 해소하려면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도 15분 이내의 근접성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일자리 등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 완전히 비슷한 사례는 아니겠지만, 스코틀랜드 의회는 최근 ‘15분 도시’와 흡사한 ‘20분 이웃’이라는 개념을 반영한 ‘2023~2040 국토전략계획’을 통과시켰다. 국가 전반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한 조건을 제시했는데, 소외된 지방 도시에 디지털 인프라를 제공해 고용을 늘리는 식이다. 물론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스코틀랜드 의회도 2040년 이후까지 내다보고 있다. 이런 문제는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10 문제들
‘15분 도시’의 목표는 거주지 인근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미래를 꾸려 행복하게 잘살자는 것이다. 일각에서 저출산 같은 사회에 산적한 문제들이 ‘15분 도시’의 구현을 통해 해결된다는 주장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15분 도시’가 모든 도시 문제의 해결 방안이 될 수는 없다. 아까 언급했던 재택근무 활성화나 수도 중심주의도 도시 발전의 측면에서만 바라볼 수 없는 주제이듯 말이다. ‘15분 도시’는 도시에서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어주는 개념이라고 보는 쪽이 가깝다. 저출산 같은 복잡한 원인이 섞여 벌어진 결과가 ‘15분 도시’의 도입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물론 ‘15분 도시’의 개념이 적용되면 의료, 교육, 어린이집 등의 보육시설이 15분 이내에 위치한 쾌적한 도시가 될 테니 육아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볼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는 방법으로 접근하길 바란다.


WHO’S THE WRITER?
카를로스 모레노(Carlos Moreno)는 복잡계 연구자이자 시스템 과학자로, 프랑스 파리 제1 대학 팡테옹-소르본의 부교수이자 소르본 비즈니스 스쿨(IAE Paris)의 학술이사다. ‘15분 도시’ 개념을 창안했으며 파리시 도시 정책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EDITOR 김현유 WRITER CARLOS MORENO PHOTO 게티이미지스코리아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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