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보호 운동의 아이콘'이었던 코뿔소 '수단'

'자연 보호 운동의 아이콘'이었던 코뿔소 '수단'

BBC News 코리아 2024-02-08 12:00:55 신고

3줄요약
수단의 모습
Getty Images

지구상 마지막 남은 북부흰코뿔소 수컷이었던 ‘수단’은 생전 여러 간절한 바람을 짊어지고 있었다.

수단은 데이팅 앱 ‘틴더’에서 ‘가장 적합한 미혼남’으로 뽑히기도 했으며, 여러 매체에선 그를 ‘가장 유명한 코뿔소’로 꼽았다. 24시간 수단을 지켜보는 무장 경호원들은 그를 ‘점잖은 거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밀렵으로 사실상 멸종돼버린 북부흰코뿔소 아종의 마지막 남은 수컷으로서의 짐을 져야 했던 삶이었다.

수단이 세상을 떠나기 약 15개월 전인 2016년 12월 5일, AFP 소속 사진기자 토니 카룸바는 케냐 산기슭에 자리한 ‘올 페제타 보호구역’에서 수단을 촬영했고, 유명한 사진을 남겼다.

카룸바의 사진엔 보호 구역에서 살아가는 수단과 사람들 사이의 다정한 관계가 담겨 있었다. 이 상징적인 사진엔 수단이 자신의 종을 말살한 종인 인간으로부터 너무 늦었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보살핌을 받는 평범한 순간이 담겨 있다.

이제 수단은 영원히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카룸바의 사진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에서 들판으로 나온 수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카룸바는 “사진을 찍는 내내 신뢰와 사랑을 느꼈다”면서 “수단의 곁에 있으면 언제나 현자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거대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수단의 태도에선 항상 차분한 인내심이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수단의 경호원들은 비록 카메라 화면 밖을 맴돌고 있긴 했지만, 수단은 제가 조심스럽게 들어왔음을 받아줬습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마지막 남은 북부흰코뿔소 수컷으로서 지니는 상징성을 알고 있는 듯 자세를 취했습니다."

사진 속 수단의 머리엔 잘린 뿔 2개가 달려 있다. 이러한 뿔은 북부흰코뿔소의 특징으로, 밀렵꾼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잘려져 있다.

수단은 몸무게가 2500kg에 달했으며, 그 머리만 해도 사람의 몸통 길이보다 길었다.

한편 ‘영국 왕립 사진 협회’의 마이클 프리처드 프로그램 이사는 카룸바의 사진에 대해 수단보다 낮은 시선에서 촬영한 덕에 “수단이 지닌 힘과 크기를 강조했다”고 평가했다.

프리처드 이사는 “이 사진의 힘은 바로 이 인상적인 동물과 인간 간 상호작용에 있다”고 말했다.

“(수단과 인간 사이) 친절함과 관계성이 느껴집니다.”

사육사가 수단을 돌보고 있는 모습
Getty Images
수단은 밀렵으로 사실상 멸종한 북부흰코뿔소 아종의 마지막 아이콘이었다

수단은 1975년에서 2009년까지 삶의 대부분을 체코 ‘두부르 크라로베’ 사파리 동물원에서 보냈다. 그 후 철저히 관리되는 케냐의 ‘올 페제타 보호구역’으로 옮겨졌다. 남아 있는 북부흰코뿔소 암컷들과 마지막으로 번식을 시도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그렇게 2018년 3월 19일, 수단은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북부흰코뿔소 번식에 성공해 이들을 멸종 위기에서 구하겠다는 희망도 꺾였다.

현재 남아 있는 북부흰코뿔소는 암컷 2마리로, ‘나진’, ‘파투’라는 이름의 이 암컷 코뿔소 모두 ‘올 페제타 보호구역’에 살고 있다.

이제 임신할 수 없기에 북부흰코뿔소 아종은 “기능적으로 멸종된” 상태다.

그러나 북부흰코뿔소와 아주 가까운 아종인 남부흰코뿔소에 대해 세계 최초로 체외수정에 성공했기에, 북부흰코뿔소의 복원도 가능하다는 새로운 희망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북부흰코뿔소 체외수정에도 성공하길 바라고 있다.

흰코뿔소 복원을 위한 ‘바이오레스큐’ 프로젝트에 참여한 독일 ‘라이프니츠 동물원 및 야생동물 연구소’ 소속 과학자 수잔 홀츠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북부흰코뿔소를 복원해 구할 수 있으리라 매우 자신한다”고 말했다.

한편 프리처드 이사는 “수단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면서 “수단의 사진은 숫자, 통계, 정부 회의만으론 불가능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꿨다. 바로 사진의 힘이다. 사실 혹은 수치에 반응하지 않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설명했다.

프리처드 이사는 사진은 그 자체로 “직설적”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면서도 이 사진을 둘러싼 맥락이야말로 자신에게 더 큰 감명을 줬다고 덧붙였다.

수단의 이야기는 수단보다도 몸집이 크다.

프리처드 이사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종의 차원에서 이제 우리 곁을 떠난 존재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수단의 생전 모습
Getty Images
사진기자 토니 카룸바는 수단이 코뿔소가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보여줬다고 말한다

수단은 단순히 전 세계에 멸종의 단면을 보여준 정도가 아니었다. 수단의 유명세 덕에 전 세계적으로 팬이 생겼고, 관광객이 모여들었으며, 보존을 위한 기부가 이어졌다.

그리고 수단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전 세계 정치인과 유명 인사들은 수단을 만났던 사진을 올리며 추모했다. 2020년 2월 ‘구글’은 남극 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의 검색창에 수단을 기리기 위한 그림을 띄우기도 했다.

카룸바는 “수단과 함께 지낸 잠깐의 시간을 기록하려 했던 나의 노력이 과거는 물론 지금까지 여전히 매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음에 기쁘고, 성취감을 느낀다”면서 “수단에 대한 보도는 전 세계 주류 언론과 환경 단체의 관심을 끌며 화젯거리가 됐다”고 설명했다.

올 페제타 보호구역에서 지난 10년간 수단과 교류했던 카룸바는 수단의 존재와 나이 든 수단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코뿔소가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느꼈다고 했다.

옛날 옛적에 사라진 공룡을 닮은 모습에 두꺼운 갑옷으로 무장한 살아있는 탱크 같아 보이지만, 코뿔소는 사실 말도 안 되게 유순한 동물이다.

카룸바는 수단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쓴 글에서 “수단의 차분함에 정말 놀랐다. 우리는 수단과 암컷 코끼리들의 사진을 찍겠다고 주변에서 분주히 돌아다니기도 하고, 수단 우리 위로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나 수단은 정말 침착하게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지속가능 경제학을 연구하는 마이클 사스-롤프스 연구원은 수단은 생전엔 낙관주의의 아이콘이었지만, 죽어선 대중의 경각심을 높이는 이야기의 아이콘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사스-롤프스 연구원은 지난 2013년, 케냐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연맹(ICUN)’의 ‘아프리카 코뿔소 전문가 그룹 회의’를 통해 수단을 만날 수 있었는데, 말년을 보내고 있던 수단은 “마치 걸어 다니는 좀비”같았다고 한다.

사스-롤프스 연구원은 코뿔소를 비롯해 코끼리, 대형 고양잇과 동물, 곰은 “카리스마가 있는” 멸종위기종이라고 묘사했다.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이러한 “카리스마가 있는” 멸종위기종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들의 관심을 받으며,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받는, 경계선을 걷는 존재라는 설명이다.

카리스마가 있는 동물들이 무대를 장악한다는 얘긴 환경단체들의 브랜딩 작업만 봐도 된다. 사스-롤프스 연구원에 따르면 ‘세계자연기금(WWF)’ 등 1960년대 및 70년대 탄생한 비영리 국제 야생동물 보호 단체들은 ‘코뿔소 구하기’ 캠페인에 착수한 바 있다.

사스-롤프스 연구원은 “인간과 카리스마가 있는 야생동물 간의 관계는 복잡하긴 하지만, 이러한 동물들은 언제나 존경 받아왔다”면서 “비정부기구들 또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이들이 지닌 강력한 이미지를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원주민 복장을 한 사람들과 수단
Getty Images
수단의 유명세 덕에 전 세계적으로 팬이 생겼고, 관광객이 모여들었으며, 보존을 위한 기부가 이어졌다

한편 야생동물 수의사이자 환경보호 운동가인 윌리엄 파울즈는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 내 비극적인 밀렵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남아공은 지구상 그 어떤 나라보다도 많은 코뿔소가 사는 곳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CUN)에 따르면 2022년엔 코뿔소 448마리가, 2021년엔 451마리가 불법적으로 살해당했다.

코뿔소를 향한 잔인함의 정도는 밀렵꾼의 경험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파울즈는 일반적으로 밀렵꾼들은 톱이나 칼로 이들의 뿔을 도려낸다면서 “심지어 밀렵당한 코뿔소로부터 수 미터 떨어진 곳에서 코뿔소 머리 조각이나 살점이 발견되기도 한다. 주변 초목이 온통 피투성이일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땅엔 코뿔소가 도망치려 했던 자국이 남아 있죠.”

파울즈는 수단의 사진을 보면 한 단어가 떠오른다고 했다. 바로 ‘외로움’이다.

“우리는 저들의 세계를 침략했다. 저들의 서식지를 파괴했다. 저들을 서로 갈라놓았다”는 파울즈는 “그렇게 이젠 지구상에 저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파울즈에 따르면 코뿔소는 성격이 사교적이며, 부드럽다. 똑똑하며 각자 개성도 있다.

파울즈는 “사진 속 수단의 조련사처럼 수단을 가까이서 접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특권을 지녔던 것”이라면서 “코뿔소들은 연약하다. 아무나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반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파울즈는 또 다른 유명한 코뿔소 이야기를 꺼냈다. 수단보단 더 행복했을, ‘탄디’라는 이름의 이 남부흰코뿔소는 2012년 3월 2일 밀렵꾼들의 공격으로 상처를 입었다.

당시 함께 있던 다른 남부흰코뿔소 암컷 2마리는 목숨을 잃었지만, 탄디는 건강을 회복해 파울즈와 같이 함께 치료를 담당했던 사육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구조와 재활을 거쳐 탄디는 새끼도 여럿 낳았다. 탄디는 얼굴에 난 영광의 상처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녔다.

파울즈는 수단과 탄디의 이야기는 경이로움을 준다고 말했다. 이들의 얼굴엔 밀렵으로부터 살아남은 흔적이 남아있다. 이들은 밀렵에 대한 경각심을 상징한다.

파울즈는 “수단과 탄디의 존재는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코뿔소를 위해 더 많은 걸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줬다”면서 “싸워서 살아남은 존재를 볼 때면 우리도 그들을 응원하며 그만큼 열심히 싸워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고 했다.

한편 미국 출신의 코뿔소 보호 전문가 케이티 로튼은 코뿔소 밀렵 이야기는 점점 더 진화하고 있으며, 사실 매우 인간적이라고 평가했다.

가장 쉽게는 마약 혹은 무기 밀매에 비교해 볼 수 있다는 로튼은 코뿔소의 뿔은 같은 무게라고 가정할 때 금, 다이아몬드, 코카인보다도 더 비싸다고 설명했다. 즉 야생동물 관련 범죄는 좋은 돈벌이가 된다는 것이다.

빈곤과 기아로 인해 생계를 유지하는 밀렵꾼들은 상업적인 조직들로부터 돈을 받는다. 로튼은 개인의 생계를 위해 밀렵에 나서는 밀렵꾼 개개인을 노린다고 해서 체계적으로 조직된 수요가 사라지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나진과 파투
Getty Images
마지막 북부흰코뿔소 암컷인 ‘나진’과 ‘파투’. 임신이 불가능하기에 북부흰코뿔소 아종은 “기능적으로 멸종된” 상태다

파울즈는 선진국 시민들은 무의식적으로 밀렵을 식민지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정부가 나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곤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밀렵으로 인한 위기는 뿌리 깊은 문제이자, 역사적이고 사회 경제적인 문제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파울즈는 “코뿔소와 같은 멸종위기종의 경우 이러한 사회경제적 환경을 드디어 개선했을 때쯤엔 더 이상 살아있지 않기에, 이러한 뿌리 깊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로튼은 “수단은 내게 ‘(한 종의 멸종까지) 가는 상황은 원치 않는다’는 상징과도 같다”면서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 전반적으로 코뿔소 밀렵은 수단이 세상을 떠난 2018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관련 데이터를 살펴보면 연간 암시장에 유입되는 코뿔소 뿔 규모 추정치는 2013년 이후 가장 낮은 상태다.

보존을 향한 노력과 생물학적 관리 이니셔티브가 결합되며 현재 아프리카 전역엔 코뿔소과 검은코뿔소종의 경우 총 6487마리가 살고 있다. 그리고 남부흰코뿔소 2마리를 제외하면 흰코뿔소종의 경우 1만6803마리가 생존해 있다.

남부흰코뿔소 체외수정이 성공하며 코뿔소를 멸종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다는 희망도 생기고 있다.

한편 프리처드 이사는 “수단의 사진은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면서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분명 인간과 코뿔소 사이에는 우리 모두가 더욱더 노력해야 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궁극적으로 난 긍정적으로 바라본다”고 덧붙였다.

카룸바는 “우리 지구의 이 축복받은, 매우 특별한 순간을 공유하는 건 경험하고 보존할 가치가 있는 동물들을 보여주는 자연의 경이로움 속으로 계속 모험을 떠날 동기가 돼준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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