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셋째 날 “물은 한곳으로 모여 뭍을 드러나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뭍을 땅이라,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 부르시고 보시니 좋았다. “땅과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또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 곧 그대로 되었다. 땅은 푸른 싹을 돋아나게 하였다.
여기까지가 성경에 나와 있는 천지창조의 일부이다. 텃밭 이야기를 시작하며 왜 내가 성경 이야기를 할까? 늘 생각 없이 밟고 다녔던 흙이었다. 평생을 밟고 다녔던 흙의 의미가 텃밭을 하면서 달리 보였다. 흙은 모든 것을 품고 자라게 하는 마법 같은 신비가 있다. 흙이 없었다면 이 세상 모든 식물과 생물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을까? 텃밭을 시작하려 흙을 보니 새삼 흙의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이전과 달리 흙을 만지는 마음이 겸손해짐을 느낀다. 흙은 우리 먼 조상들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삶의 터전이었다. 또 먼 훗날 태어날 자손들이 딛고 살아야 할 터전이기도 하다.
한겨울에 꽁꽁 얼었다 풀린 흙을 갈아엎고 고른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다. 찬바람이 물러나고 따스한 온기가 대지를 뒤덮으면서 봄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씨앗을 심어도 좋다는 신호다. 흙을 갈아엎어 골라주면 손으로 만져도 뽀송뽀송하게 부서진다. 어린 씨앗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 된다. 여기에 영양분인 퇴비를 섞어주면 텃밭의 준비가 완성된다.
이제 흙은 모든 것을 몸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씨를 뿌린 대로 싹을 키워낼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은 이 흙의 속성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한 번도 착오가 없고 실수를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처럼, 병원에서 신생아가 바뀌었느니 영안실에서 시신이 바뀌었느니 하는 뉴스거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흙은 정직하게 생명을 키워낸다. 그러면서 한 번도 자랑하거나 호들갑을 떠는 일이 없다. 그저 묵묵히 제 일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겸손함의 극치다.
분양받은 텃밭에 밑거름으로 퇴비를 주고 첫 작물로 감자를 심었다. 감자는 3월 하순 경에 심어야 여름 장마 전 수확할 수 있다. 늦으면 장맛비에 썩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감자의 눈을 찾아 서너 조각으로 나누어서 심으면 된다.
감자와 고구마는 같은 뿌리 식물이지만 고구마는 싹을 잘라 심지만 감자는 감자 몸을 조각내어 심는다. 따라서 감자 싹은 어미의 몸을 양분으로 하여 자라는 특징이 있다. 감자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여 어린싹을 키워내는 숭고함이 있다. 그 어린싹은 어미를 닮은 감자를 주렁주렁 흙 속에 품어 자신의 몫을 다 해낸다. 자연의 신비함이란 이렇게 작은 생명 하나하나가 갖고 있는 의미에 있지 않나 싶다.
텃밭을 하면서 이들이 주는 생명의 신비가 큰 기쁨이다. 세상은 의미를 부여할 때 생명력이 있다. 비록 말 없는 미물일지라도 나에게 주는 기쁨은 그 무엇보다 깊다. 은퇴 후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는 텃밭이다. ‘작물도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 한다. 올 한 해 작물들과 나눌 이야기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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