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안 디자인과 볼보 EX30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정수, 스웨덴 룰레오에서 볼보 EX30을 만났다.
설원 위를 달리는 아이스 트랙 드라이빙도 인상적이었지만 해질녘 룰레오의 시골길을 운전하는 건 EX30에 주입된 많은 아이디어와 미감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실내 대시보드와 도어트림을 가로지르는 앰비언트 라이트는 미온의 일몰, 물기 먹은 나무와 가정집의 페인트 같은 창밖의 풍경을 스포이드로 시시각각 추출해 낸 듯한 색으로 공간을 물들였다. 머리 위의 거대한 글라스 루프는 울적하고 매혹적인 하늘의 무늬를 실내로 들인다. 도로 양옆으로 솟아난 침엽수의 그림자는 이곳 자연과 닮은 실내의 질감을 바위 삼아 이끼처럼 멍울졌다가 사라졌다. 볼보의 디자인 언어는 늘 그래왔다. 괄목할 만한 하이라이트들로 눈길을 끌기보다 볼수록 이것만큼 좋고 특별한 게 없는 평범의 비범함. EX30의 실내에는 눈을 거슬리게 하거나 의아한 구석은 하나도 없다.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것이 사라질 이유는 결코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게 제자리인 듯 싶다. 이건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본성이기도 하다.
비슷한 기질을 가진 이 땅의 건축물도 놀랍다. 룰레오에서 머무는 동안 묵었던 트리 호텔과 아틱 배스는 태초부터 그곳에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자연스럽지만 결코 흔하지 않다. EX30처럼 유일무이하다. 나무 사이에 둥지를 튼 트리호텔은 스칸디나비아 최고의 건축가들이 디자인했다. 스노 슈즈를 신고 눈밭을 오르다 보면 각각의 테마를 가진 독립적인 객실에 닿을 수 있는데, 울창한 숲을 고스란히 반사하는 은막의 미러큐브부터 원반 형태의 UFO, 300개의 새집이 외관을 둘러싼 바이오스피어까지. 독특한 구조물들이 자연과 태연한 조화를 이루는 숲에는 순록이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의 구분도, 우선도 없다. 통창을 통해 안에서 바깥을 볼 수 있는 건 물론 종종 밖에서도 안이 들여다보인다. 지위도 예외도 없이. 트리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아틱 배스는 강 위에 떠 있는 호텔로, 마찬가지로 안팎을 연결하는 통창으로 지어진 독채 객실, 그리고 사우나와 얼음 노천탕으로 이루어졌다. 얼어붙은 강 위에 떠 있는 메인 건물의 원형 디자인은 하천을 떠내려가는 통나무 더미 모습에서 비롯했다.
땅 위로 눈살을 찌푸리는 어떤 광원도 없는 곳, 밤이 오면 모든 건축물은 새카만 어둠에 몸을 감춘다. 하얀 땅과 까만 하늘, 형형한 별의 존재감만 또렷하다. 이곳 여름엔 백야가 펼쳐지고 하늘이 맑은 겨울밤에는 오로라를 보는 행운도 기대해볼 수 있다. 오로라는 태양에서 비롯한 전하를 가진 입자가 지구의 자기장과 반응하는 현상으로 극지방에서 볼 수 있으며 라틴어로 ‘새벽’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아쉽게도 오로라는 볼 수 없었지만 어찌됐건 ‘새벽’을 만나긴 했다. 새벽녘, 멀리서 들려오는 풍경소리에 눈을 떴더니 창밖으로 목에 종을 단 순록 무리가 흰 눈밭 위를 줄지어 걷고 있었다. ‘새벽이 신비라면 저건 새벽이다.’ 전날밤에는 늙은 순록고기를 먹었고 어김없이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온 물을 마셨다. 이곳에서 경험한 많은 것이 자연을 모방하고 아름다움을 취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로 순환하고, 연결되려 한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게 바로 볼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