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더봄] 헤어질 결심, 넘치는 것을 안고 사는 괴로움

[박재희 더봄] 헤어질 결심, 넘치는 것을 안고 사는 괴로움

여성경제신문 2024-04-11 10:00:00 신고

얼마 전 동생이 새로 이사한 집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열린 집들이 축하 파티에 모처럼 가족이 모두 모였어요. 신도시에 지은 신축 아파트라기에 집을 구경한다는 기대감도 컸습니다. 진입로부터 넓고 층고가 높은 주차 공간에 최신식 출입 시스템을 갖춘 단지더군요. 새집 구경에 마음이 부풀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는 먼저 온 식구들이 집구경을 하고 있더군요. 흥분과 감탄의 소리가 들려오는 집안으로 서둘러 들어간 후 저 역시 곧바로 공간의 놀라운 아름다움에 압도당했습니다. 저는 집의 구조나 아파트에서 바라보이는 전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집에 놓여있던 가구에 관한 얘기도 아니고요.

복도와 거실을 지나며 차례로 방문을 열어보면서 저를 놀라게 한 것은 놀라운 정갈함, 간소함이었습니다. 넘치는 것이 없는, 비어있는 벽과 공간은 모두에게 정말 오랜만이었거든요.

상상과 로망으로 꿈꾸는 여유 있게 비어있는 공간 /게티이미지뱅크
상상과 로망으로 꿈꾸는 여유 있게 비어있는 공간 /게티이미지뱅크

“대체 몇 평인데 이렇게 넓어?”

모두 넓다고 생각했지만 놀랍도록 넓어 보이는 집의 비결은 이를테면 ‘잘빠진 평수’라거나 수납의 노하우가 아니었어요. 적게 소유하고 심플하게 사는 삶의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대부분 가정의 거실을 차지하는 TV가 없는 집의 거실 공간은 넓었어요. 어지간한 독서인들 집의 인테리어 역할을 담당하며 벽면을 장식하는 책장 따위도 없었습니다. 부부와 대학생 조카들까지 가족 모두가 어마어마한 독서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저로서는 신기해서 물었습니다. 대체 책은 다 어디 있냐고.

두고두고 다시 꺼내 읽을 책이 아니라면 정기적으로 모두 기증하고 있으니 거대한 책장은 필요 없다더군요. 책을 구매하는 속도가 읽는 속도의 3배가 넘어 늘 책이 쌓이고, 가지고 있는 책을 또 산 후에 깨닫는 경우가 있어 가끔 책을 처분하는 것으로는 책장을 비우지 못하는 저는 통렬히 반성해야 했습니다. .

‘집이 꼭 모델하우스 같다’고 감탄하면서 아이들과 부부방에 있는 붙박이 옷장도 열어보았습니다. 세상에··· 옷걸이의 걸린 옷들이 겹치지 않고 여유 있게 진열된 모습이라니요. 의류 매장의 쇼케이스에서나 봤던 장면을 보면서 양손을 비집어 넣어야 겨우 구겨진 사이 공간을 펼칠 수 있는 제 옷장 속의 옷들이 떠올랐어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확보된 공간에 있는 옷은 소중하게 존중받는 느낌이었습니다. 한 계절에 제게 필요한, 실제로 입는 옷이 얼마나 될까 하고 떠올려 봤습니다. 패셔니스타는커녕 대충 꿰고 다니는 처지면서 왜 언제나 적절한 입성을 보여주는 동생보다 더 많은 옷을 가지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지요.

“안 입는 옷은 처분해야 하는데 못 버리겠어. 아깝기도 하고 말야.” 올케도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누구나 비슷하지 않나요? 언젠가 살이 빠지지 않을까 해서 가지고 있는 옷, 비싸게 주고 샀는데 이제 유행이 지나버린 옷들을 버리지 못하는 것 말입니다. 동생에게 비결을 물었더니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난 옷을 잘 안 사니까 별로 처분할 옷이 많지는 않은데 여하튼 버리지 않아요. 깨끗하게 세탁하고 이건 언니한테 준다, 이건 지희한데 준다 생각하고 기증받는 곳으로 보내거든.”

사랑하는 조카, 사랑하는 언니에게 준다고 생각하고 기증처로 보낸다니 놀랍고도 기발한 방법이지요?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될 리는 없겠지만 저도 한번 시도해 보리라 결심했습니다.

물건으로 채우지 않은 심리적 휴식과 상상력을 키우는 비워진 공간 /게티이미지뱅크
물건으로 채우지 않은 심리적 휴식과 상상력을 키우는 비워진 공간 /게티이미지뱅크

공간을 원하면 말 그대로,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더라고요. 얼마든지 넓은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면 공간을 얻기 위해서 채우고 있는 물건을 빼는 방법이지요. 물건을 들이기 전에 뺄 것이 없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했겠지만 이미 채우고 있는 처지니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많으면 귀히 여기기가 아무래도 힘들어요. 적어야 귀해지는 기묘한 원리! 행복하게 누리면서 물건의 소용이 다하는 때까지 쓰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가까이 할 물건만 적게 소유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딸은 잘 버리지 못하고 집에 한 번 들어온 물건은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것 같다며 불평했습니다. 자기 눈에는 쓰레기인데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엄마가 물건을 쌓아두니 더 공간이 없어 불만이라고 말이죠. 사실 우리 세대만 해도 물건이 귀한 시대를 살았거든요. 종이 쇼핑백, 일회용 박스, 배달 음식 용기까지 너무 잘 만들어진 잉여품이라 저는 가끔 버리는 행동으로 마음이 괴로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버리기 힘들어 모아둔다면 그야말로 새로운 쓰레기를 오래된 쓰레기가 되도록 기다리는 것일 테니 습관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너무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제대로 잘 가지지 못했다는 것과 동의 / 게티이미지뱅크
너무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제대로 잘 가지지 못했다는 것과 동의다. /게티이미지뱅크

집들이에 다녀온 후 저는 물건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비명을 지르고야 말았네요. 에코백만 해도 너무 많은 거예요. 행사마다 만드는 에코백, 기업에서 단체에서 별 고민 없이 만들어 나눠준 에코백이 많아도 너무 많아요. 텀블러도 마찬가지죠. 일회용품 줄이자고 에코백에 텀블러를 사용하자고 하지만 이렇게 많아 잉여가 되면 그 자체로 없애야 할 고민거리가 되어버립니다.

면으로 만드는 가방이라고 마구 만들면 친환경(에코프랜드리)이 아니지요. 너무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 더 쉽게 버리는 시스템, 고민 없이 이어지는 과잉 소유의 삶을 이제 좀 털어낼 생각입니다. 덜 가지고 단순하게, 더 집중하는 삶을 외치는 중입니다. “가볍고 간결하게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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