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 반듯한 얼굴

[아름다운 것] 반듯한 얼굴

문화매거진 2024-04-17 10:37:29 신고

[문화매거진=MIA 작가]

반듯하다 | 형용사

1. 작은 물체, 또는 생각이나 행동 따위가 비뚤어지거나 기울거나 굽지 아니하고 바르다.
2. 생김새가 아담하고 말끔하다.
-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작년 3월에 간 루브르 박물관에서 수많은 그림 중, 가장 인상적인 건 조토의 그림이었다. 이유를 찾으며 그의 그림을 들여다볼 때 ‘반듯한 얼굴’이라는 정확한 수식어가 머릿속에 문득 생겨났다.

▲ The Crucifixion,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330년경, 전체와 부분
▲ The Crucifixion,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330년경, 전체와 부분


조토가 그린 그림 속 얼굴들은 매끈하고 다소곳한 모양으로 다듬은 조각 같았다. 연극적인 표정과 손짓이 오히려 그림 안에서는 자연스러워지는 분위기가 새로웠다. 견고하고 평범한 얼굴의 매력은, 빛과 그늘이 부드럽게 양감을 만드는 고전주의 그림들과 비교되며 더 잘 다가왔다.

3시간의 밀도 높은 단체 도슨트 투어를 돌며 한 작품을 1분도 들여다보기 어려웠기에 조토의 그림을 오래 보지 못한 게 끝내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날 센강 유람선 일정을 취소하고 한 번 더 루브르에 갔다. 1, 2층을 미련 없이 건너뛰고 그림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가서 보고는 만족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다음 행선지였던 이탈리아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14~15세기에 그려진, 비슷한 느낌의 얼굴이 있는 그림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일정을 바꾸지 않았겠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 그때의 얼굴들이 내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는지 느낄 기회였다고 생각하면 그 시간이 별로 아깝지 않다. 

새로운 그림책 작업에 들어간 요즘, 이제 그리는 얼굴들을 전보다는 구체적인 말로 명명할 필요를 느낀다. 조토 그림에 붙인 수식어가 그림의 인상을 구체화했던 것처럼 나의 그림에도 작용하는 단어의 힘이 있지 않을까 짐작하며. 

관련해 구도 나오코 시인이 겪은 어느 일화를 첨부한다.* 그는 따뜻한 곳에서 나고 자라 눈을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타 지역에 갔을 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았다. 처음에는 예쁘다는 생각뿐이었지만, 누군가 눈이라는 걸 알려주자 ‘아, 이것이 눈이구나’라고 생각한 순간 추위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어떤 개념은 명확한 단어로 깨달을 수 있다면, 한 번쯤은 내가 그리는 얼굴을 글자로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 '꿈이 아닌 꿈 속에서' 시리즈, MIA, 2022
▲ '꿈이 아닌 꿈 속에서' 시리즈, MIA, 2022


지금까지 내가 그린 얼굴들은 사진 속 인물을 차용한 결과다. 사진은 스케치의 완성을 판단할 기준이 되는 용도이기 때문에 그림과 사진 속 얼굴과 요소는 닮았지만, 똑같지는 않다. 형태는 최대한 사진 원본과 가깝게 그리되, 표정에서 변형을 시도한다. 사진에서 웃는 표정이 있으면 무표정으로 바꿔 그렸는데,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면 관객들이 사람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순수한 의미로 받아들일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순수한 의미’라든지, ‘중립적인 얼굴’은 누군가에게 ‘무섭다’는 의미로 번역될 수 있다는 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웃음을 지우다가 본의 아니게 눈꼬리를 올리고 입매를 다부지게 그린 경우 ‘화가 나보인다’는 감상을 듣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 결과가 딱히 불만족스럽지는 않다. 일반적인 사진의 분위기에서 한 발은 멀어졌다는 성과를 얻었으므로. 아무튼 요즘도 나는 웃는 얼굴은 그리지 않는다. 

앞으로 그림에 어떤 얼굴을 드러내야 할지, 반은 재미 삼아, 반은 좀 더 원하는 모양에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수식어를 붙여 본다. ‘망설이는 얼굴’, ‘사랑하는 얼굴’, ‘기다리는 얼굴’, ‘우는 얼굴’, ‘희망에 찬 얼굴’ 등 다양한 표현이 떠오른다. 울면서도 희망에 찰 수 있고, 담담해 보이지만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상태일 수도 있다. 단어를 기준 삼아 그림의 길을 찾아가더라도, 완성된 그림은 분명 처음의 의도에서 반대편에 있는 의미까지 포함할 가능성을 쥐게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을 예측하는 건 복잡하면서도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그림책 만들기 트레이닝, 48쪽, 하세가와 슈헤이,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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