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우의 굴러서 세계 속으로] 바퀴를 달고 가볍게 미끄러지기

[김지우의 굴러서 세계 속으로] 바퀴를 달고 가볍게 미끄러지기

채널예스 2024-04-19 10:55:36 신고


휠체어를 타고 세상을 누비는 구르님 김지우의 여행기.
격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나는 스무 살까지 홀로 외출한 적이 없다.

이 문장은 스릴러 영화의 독백이나, 충격 미스터리 사건을 다른 소설의 도입부가 아니다. ‘자연스러운’ 내 일상이었고,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변하지 않을 듯한 현실이기도 하다. 나는 뇌성마비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이다.

2000년대에 태어나, 선배 장애인들과 그 동료들이 싸워가며 바꿔온 세상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내게 세상은 미지의 세계였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모르는 것투성이인 채로 살았다. 휠체어가 그중 하나다. 어릴 때부터 몸에 맞는 휠체어를 타야 한다는 것도 몰랐고, 언젠가 걸을 수 있을 줄 알았던 나는 7살 때까지는 유아차를 탔고, 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어서야 수동 휠체어를 타기 시작했다. 팔로 바퀴를 굴리는 것은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17살 전까지는 홀로 움직이지 못했다. 17살이 되어서야 수동 휠체어를 굴리는 전동 키트를 휠체어에 장착했다. 장애가 있는 몸은 여러 보조기기와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신체가 된다. 나는 그제야 홀로 움직이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몸을 가질 수 있었다.

스무 살이 되어서야 지하철을 타 보았다. 비장애인 또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외출과 대중교통 탑승이 내게는 하나하나 큰 모험처럼 다가왔다. 요즘 자주 사용되는 밈을 빌려 표현하자면, ‘오히려 좋았’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새로운 경험이 주는 한 감각한 감각을 생생히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집 밖으로 홀로 나서기, 지하철 타기, 버스 타기, 상점 들어가기, 기차 타기가 하나하나 도전이었다. 그러므로 난 계속해서 작은 도전에 성공하는 사람이 되었다. 동시에 그 성공을 모두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제껏 돌아다니지 않았던 시간을 메우기라도 할 것처럼 지하철을 타고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는 범위는 점점 넓어졌다. 고등학생 때부터 운영해 온 유튜브 채널에서 협찬을 받아 국내 여행지들을 탐방했고, 시간이 날 때면 국내든 해외든 가리지 않고 여행했다. 경험이 쌓일 때마다, 더 멀리 떠나고 싶었다.

나의 아빠인 태균과 단둘이 홍콩에 갔을 때였다. 태균은 관광지를 모두 돌아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고, 나는 우연히 들어간 소품샵에서의 작은 물건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우리는 잠시 거리를 둘 필요가 있었다. 관광지는 보고 싶고, 휠체어를 타는 딸을 혼자 내버려두기엔 불안한 마음으로 진동하는 태균을 뒤로 하고 나는 홀로 홍콩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휠체어가 펑크 나면 어떡하지, 지하철에서 내릴 때 바퀴가 빠지면 어떡하지, 모르는 사람이 해코지를 하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불안감과 함께 어깨에 맨 가방끈을 꾹 쥐고 울퉁불퉁한 거리를 돌아다녔다. 모르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들어간 마스크 가게에서 귀여운 무늬의 마스크를 사고, 길거리 음식을 사 먹었다. 홍콩의 지하철도 타 보았고, 어둑어둑해질 때 즈음에서야 호텔로 돌아왔다. 고작 3시간의 외출이었지만, ‘해외에서도 혼자 돌아다닐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또 하나의 오래 기억될 성공이었다.

여기까지가 스무 살까지 외출하지 못하던 내가 호주행 직항 비행기에 홀로 몸을 싣고 있는 이유다. 3년 전 나는 벌벌 떨며 지하철을 탔었는데, 실로 급작스러운 출발이 아닐 수 없다. 난 이런 기세 좋은 대책 없음이 마음에 든다. 그러니까, 마치 새총으로 쏘아 올려진 탄알이 된 기분이다. 아주 길고, 깊고, 오래 당긴 고무줄에 몸을 실은 탄알 말이다.

호주행은 아주 갑작스레 정해진 일이었다. 방학 때 교환학생을 가면 장학금을 지원해 주는 교내 프로그램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학교 리스트를 보니, 미국, 독일, 일본, 대만에 있는 익히 들어본 여러 학교가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나는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호주의 들어본 적 없는 학교를 선택했다. 1월에 여름인 나라에 가고 싶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뇌성마비인 나는 추우면 근육이 뻣뻣해지고 강직이 생겨 생활하기 어려우니 추운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뿐이었다. 이 나라가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선물해 준다는 것을 이때는 알지 못했다.

프로그램 심사를 거쳐 선발된 내 통장에는 오백만 원이 들어왔다. 잠시 마음이 든든했지만, 호주 학교의 학비가 사백만 원이 넘어서 비행기표 값도 충당하지 못했다. 어쨌든 떠난다. 캐리어 한 번 끌어보지 못했고, 짐 가방 한 번 혼자 싸본 적 없고, 가장 중요하게는 한 달간 머물 학교 캠퍼스가 어디 위치한지도 제대로 모른 채로. 바퀴를 달고 사는 삶은 가끔 몸과 머리가 가벼워야 더 멀리 미끄러질 수 있다……라고 내 준비성 없음을 아름답게 포장해 본다.

호주에서의 한달살이(정확히는 6주)를 마치고 한국에 와서 여행을 회고하는 지금, 나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느낀다. 『끝내주는 인생』의 「신인들」에서 이슬아 작가는 낮잠을 자고 자신이 새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잠에서 깨어난 직후, 마찬가지로 꿀벌을 만나고 새사람이 되었던 계미현 작가를 만나러 간다. 그 글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자신들도 모르게 새로 태어나버릴 것이다’. 여행할 때면 그 이야기를 떠올린다. 나도 모르는 새 늘 새사람이 되었다. 휠체어를 바꿨을 때, 홀로 외출하게 되었을 때, 홍콩에서의 거리에서, 그리고 호주에서. 이 글은 내 새로 태어남의 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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