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6일!] 하루 전 걸려온 전화... 폐허가 된 도시 '체르노빌'

[4월26일!] 하루 전 걸려온 전화... 폐허가 된 도시 '체르노빌'

머니S 2024-04-26 07:16: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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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4월26일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손상된 4호기 원자로 모습. /사진=로이터 1986년 4월26일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손상된 4호기 원자로 모습. /사진=로이터
1986년 4월26일. 어두운 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당시 소비에트 연방(소련)이던 우크라이나 SSR 키예프주 프리피야트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4호기 원자로가 폭발한 것이다. 이 폭발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원자력 사고로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 '7단계: 심각한 사고'에 해당한다.

1986년 4월26일 오전 1시23분(이하 현지시각) 이후 38년이 지난 지금까지 체르노빌은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됐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불러온 비극 중 하나다. 이 안타까운 비극은 소련 해체를 불러온 주요 원인 중 하나임과 동시에 전 세계 반핵 운동에 불씨를 지피기도 했다.

처참했던 폭발 현장과 무책임한 책임자

1986년 4월26일 새벽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 사진은 체르노빌 사고 현장에 출동하는 드라마 속 한 장면. /사진=HBO 공식 유튜브 '체르노빌(2019)' 공식 트레일러 영상 캡처 1986년 4월26일 새벽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 사진은 체르노빌 사고 현장에 출동하는 드라마 속 한 장면. /사진=HBO 공식 유튜브 '체르노빌(2019)' 공식 트레일러 영상 캡처
1986년 4월26일 오전 1시23분. 4호기 원자로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력으로 원자로를 덮고 있던 반응로 뚜껑이 파손되며 날아갔다. 쇠로 된 뚜껑의 무게는 약 1000톤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엄청난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

폭발은 완공된 지 3년 정도 지난 4호기 원자로에서 발생했다. 가장 최근에 지어진 4호기 원자로에서 폭발이 발생했다는 점이 의문이다. 실마리는 원자로들의 완공 시점에서 찾을할 수 있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 지어진 원자로는 모두 12월에 완공됐다.

폭발 당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는 1977년 12월 완공된 1호기 원자로를 시작으로 총 4개의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었다. 1978년 12월에는 2호기, 1981년 12월에는 3호기, 1983년 12월에는 4호기 원자로가 완공됐다. 1986년 당시에도 5호기와 6호기 원자로가 추가로 건설되고 있었다.

발전소 책임자들은 '연말 보너스'를 받기 위해 12월까지 공사를 마치는 데 주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83년 12월 완공된 4호기 원자로 역시 그 기한을 맞추기 위해 안전검사를 생략했다. 담당자들의 무책임함과 지나친 성과주의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의 불씨였다.

폭발 하루 전… 발전소에 걸려 온 한 통의 전화

폭발 하루 전인 4월25일 시작된 안전검사는 자정을 넘어 4월26일 진행됐다. 사진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인근 '레드 포레스트'라고 불리는 지역의 위험 표지판. /사진=로이터 폭발 하루 전인 4월25일 시작된 안전검사는 자정을 넘어 4월26일 진행됐다. 사진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인근 '레드 포레스트'라고 불리는 지역의 위험 표지판. /사진=로이터
폭발 하루 전인 4월25일에는 공사 기한을 맞추기 위해 생략했던 안전검사가 예정돼 있었다. 4호기 원자로 안전검사는 완공 이후 여러 차례 진행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담당자들은 책임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이번 안전검사를 통과해야만 했다.

4호기 원자로 담당 엔지니어는 안전검사를 위해 비상 발전기 전원을 끄고 원자로의 출력을 절반으로 낮췄다. 그 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발전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키예프의 전력 담당 공무원이었다. 공무원은 키예프 소재 공장들의 생산 목표량을 달성하기 위해 전력 생산량을 낮추지 말라고 전했다.

이 전화로 발전소는 안전검사를 잠시 미뤘다. 그렇게 4월26일 자정에 근무 교대로 새로 투입된 근무자들은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안전검사가 진행됐다. 안전검사를 위해 무리하게 전기 출력을 낮추는 순간 원자로는 제어 불능 상태에 빠졌다.

이에 책임자 아나톨리 댜틀로프는 출력을 높이기 위해 노심에 제어봉을 제거하라고 지시했다. 원전 안전 규정상 원자로에는 최소 15개 이상의 제어봉을 유지해야 한다. 규정을 어긴 지시에 직원은 댜틀로프에게 실험 중단을 요구했으나 댜틀로프는 이를 묵살하고 강행하도록 지시했다.

제어봉을 제거하는 순간 발전소에는 비상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직원이 원자로 가동을 멈추기 위해 비상 정지 버튼을 누르는 순간 원자로는 약 6000도의 열을 뿜어냈다. 엄청난 열기로 원자로의 냉각수가 기화하면서 압력을 견디지 못한 원자로는 오전 1시23분 폭발했다.

히로시마의 400배…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든 영웅들

사고 직후 출동한 소방관 등은 방호복 없이 현장에 투입됐다. 사진은 한 드라마 속 체르노빌 원전 폭발 이후 사고를 수습하는 대원의 모습. 사진=HBO 공식 유튜브 '체르노빌(2019)' 공식 트레일러 영상 캡처 사고 직후 출동한 소방관 등은 방호복 없이 현장에 투입됐다. 사진은 한 드라마 속 체르노빌 원전 폭발 이후 사고를 수습하는 대원의 모습. 사진=HBO 공식 유튜브 '체르노빌(2019)' 공식 트레일러 영상 캡처
폭발 당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약 400배에 달하는 방사능이 유출됐다. 폭발로 방사능 핵물질과 흑연 파편으로 뒤덮인 체르노빌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됐다. 당시 측정된 방사능 수치는 1만 뢰트켄(피폭되는 방사능의 세기)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1만 뢰트겐의 방사능에 사람이 1시간 동안 노출되면 즉사한다.

당시 발전소에서 근무 중이던 약 180명의 직원은 사고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한 엔지니어는 피폭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핵연료를 식혀야 한다는 일념 하에 냉각수 벨브를 열기 위해 달려가기도 했다.

폭발 신고를 접수한 소방은 1차로 14명의 소방관을 출동시켰다. 이후 새벽 동안 약 200명의 소방관이 투입돼 불길을 막았다. 그들은 4호기 주변과 3호기 지붕에 붙은 불을 진화해 추가적인 폭발을 막았다.

그러나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들은 현장에서 구토하며 쓰러졌다. 방호복도 없이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들은 대부분 방사능에 피폭돼 사고 수습 이후 피부색이 보라색, 흑갈색으로 변하고 살갗이 벗겨지는 등 고통 속에서 숨을 거뒀다.

폭발의 또 다른 이유… 강대국 이념 경쟁 '냉전'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핵 경쟁이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초래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진은 체르노빌 참사 35주년 추모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 /사진=로이터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핵 경쟁이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초래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진은 체르노빌 참사 35주년 추모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 /사진=로이터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난 이후 계기를 분석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 때문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에도 소련 당국은 미국과의 이념 경쟁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을 고려해 원전 사고를 숨기기 바빴다. 그 영향으로 현재까지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한 정확한 피해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체르노빌 포럼은 2005년 보고서를 통해 방사능 유출로 사고 당시 50명 이상이 숨졌으며 후유증으로 약 9000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9만3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전망했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로부터 약 3㎞ 거리의 프리퍄트 주민들은 폭발 36시간이 지나서야 대피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36시간 동안 고스란히 엄청난 수치의 방사능에 피폭된 셈이다.

체르노빌 원전은 사고 6개월 뒤 재가동에 들어갔다.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는 에너지 부족을 이유로 남은 3개 원자로를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1년 2호기에서 또다시 화재가 발생해 같은해 10월 가동이 중단됐고 이후 1호기와 3호기도 가동을 멈추면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는 완전 폐기됐다.

참사로부터 38년이 지난 지금도 체르노빌은 반경 30㎞ 내 출입이 통제된 상태다. 도시는 방사능을 머금은 채 시간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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