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도, 이야기도 경계가 없습니다.

향기도, 이야기도 경계가 없습니다.

바자 2024-04-26 08:00:02 신고

Seolhui Lee, Courtesy of Seolhui Lee. Photo: Chae Dae Han
Seolhui Lee, Courtesy of Seolhui Lee. Photo: Chae Dae Han
두 사람과 작가의 인연은 2020 부산비엔날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왜 구정아여야 했습니까? 구정아는 관람객 주변을 둘러싸는 거대한 공공미술작품과 아주 친밀하면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 섬세한 조각작품을 모두 아우르는 예술가입니다. 우리는 부산비엔날레 때 이미 구정아가 1990년대 중반부터 향기와 냄새를 모티프로 삼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게 표면적으로 다소 드러나지 않았다고 느꼈고 어쩌면 향을 가지고 함께 다시 일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게다가 구정아는 30년 동안 국제적인 커리어를 다져오면서도 본국의 국공립 미술관에서 전시를 연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저희에겐 매우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에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구정아를 초청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특별히 향이라는 미디엄에 주목한 이유가 있습니까? 구정아의 예술에는 일종의 ‘시적 가벼움’이 깃들어 있는데요. 특히 향기와 냄새에 관한 작업에서 도드라집니다. 향기 분자는 마법처럼 사라지는 존재이지요. 향기는 비물질주의, 무중력, 무한함, 공중부양을 나타내고 작품 안에서 공명합니다.
말한 대로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부유하고 뒤섞이는 독특한 특성을 가진 물질입니다. 향기를 전시하는 데 있어서 가장 신경을 쓴 지점은 무엇입니까? 상대적으로 작은 파빌리온이라는 공간에 많은 냄새가(아마도 지나치게 많은 냄새가) 존재하고 이것들이 섞이는 걸 막을 수는 없습니다. 말한 대로 향기는 경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또한 몰입 체험의 일부로 작용할 것입니다.
Jacob Fabricius, Courtesy of Jacob Fabricius. Photo: Chae Dae Han
Jacob Fabricius, Courtesy of Jacob Fabricius. Photo: Chae Dae Han
전시 제목인 ‘ODORAMA CITIES’에서 ‘오도라마’는 향기를 뜻하는 ‘Odor’에 드라마의 ‘rama’를 결합한 단어로 작가의 전작에서 가져왔습니다. 여기에 도시의 복수형인 ‘Cities’라는 단어를 결합한 것이 의미심장해 보입니다. 처음에 우리는 남한과 북한의 대표적인 16개 도시를 선정했습니다. 한국관 선정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심사에서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 “그럼 작은 마을과 산촌은요? 그들도 대변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실제로 이 말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다양하고 복잡한 한국의 향기 ‘경관’을 얻었고 프로젝트가 더 흥미진진해졌어요. 국립현대미술관(MMCA)의 큐레이터 이수연은 이번 전시의 카탈로그 에세이 〈나와 내가 아님의 밀접한 조우: 구정아의 오도라마 시티즈에 관하여(2024)〉에서 “프로젝트의 제목인 ‘ODORAMA CITIES’는 존 워터스가 감독한 컬트 클래식 영화 〈폴리에스터〉를 참조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덕분에 ‘오도라마 시티’라는 제목에 반전이 담깁니다. 워터스는 자신의 초기 작품에서 전설적인 ‘스크래치 앤 스니프 카드’를 사용했죠. 이것을 시발점으로 우리의 관심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에게 냄새를 방출했던 1960년대의 ‘스멜-오-비전’으로, 나아가 영화사 자체로 뻗어나갔습니다. 이야기와 향기에 관한 또 다른 질문으로도 이어졌죠. 서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는가? 무엇이 기억을 촉발하는가? *

* 존 워터스가 감독, 제작, 각본을 맡은 1981년 영화 〈폴리에스터〉는 ‘오도라마’라는 마케팅 전략을 동반하여 개봉했다. 당시 관객은 스크래치 앤 스니프 카드를 통해 화면에서 보여지는 내용과 관련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한편, 스멜-오-비전은 관객이 영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후각을 통해 알 수 있도록 영화를 영사하는 동안 냄새를 방출하는 장치로, 1960년 영화 〈Scent of Mystery〉에서 유일하게 적용되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전 세계 각지에서 오픈콜을 통해 한국에 대한 기억을 수집했습니다. 사실 오픈콜 방식은 지난 부산비엔날레에서 코로나19로 작가들이 직접 지역의 리서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었죠. 다시 오픈콜의 방식을 끌고 온 이유가 궁금합니다. 향기를 통해 한반도의 초상화를 만드는 일. 말로만 들으면 쉬워 보입니다만 전시라는 최종 결과에 이르기까지 작가와 큐레이터는 무수한 난관에 봉착하게 마련입니다. 창조에 한몫하는 것은 분명 보람찬 일이지만 때로는 절망감을 맛보게도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관람객은 작품의 이면에 도사리는 작은 변화의 과정을 감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작업의 일부이죠. 우리는 이번 전시에서 보통의 경우에는 예술가와 큐레이터만 경험하는 이 중간 과정을 살짝 비틀어서 대중과 나누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픈콜입니다. 관객이 우리의 여정에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요.
특히 탈북민이나 해외 입양인들의 한국에 대한 향기 기억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 또한 오픈콜을 통해 자연스럽게 수집한 결과인가요? 처음엔 북한에 방문할 계획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인 이설희는 북한을 방문하기 물론 어렵지만 외국인인 야콥 파브리시우스는 가능합니다. 북한에 접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해봤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19 이후의 보건 문제와 정치적인 상황으로 진행이 어려웠습니다. 최근에는 외국인도 북한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제한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 북한에 거주한 적 있는 외국인들과 연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간접적인 경험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이나정과 장유진은 서울의 탈북민 커뮤니티와 일대일 만남을 통해 놀라운 역할을 해냈습니다. 이설희는 해외 커뮤니티에서 주최하는 컨퍼런스에 오랜 시간 참석해온 탈북민들과 연이 닿을 수 있었고, 주한 덴마크 대사가 주최한 만찬에서 한국 입양인들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했습니다. 야콥 파브리시우스는 카탈로그에 글을 써준 작가 중 한 명인 에바 틴드와 같은 덴마크의 여러 한국 입양인을 알고 있었고요. 우리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출발하여 방대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상당히 고된 일이었지만, 아시다시피 한 사람과 연결되면 10명이 되고, 순식간에 30명이 됩니다. 언제나 처음이 가장 어렵죠.
특별히 본인과 공명했던 이야기가 있습니까?야콥 “아버지는 텅스텐 광산의 책임자였습니다. 텅스텐 광산 근처는 석탄 냄새로 가득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저희 가족 모두를 아침 5시에 깨워 쇠 주전자에 데운 산양유를 마시게 했어요. 근처 염소 축사에 있던 염소 한 마리로 우리 가족의 영양을 챙기려 하셨죠.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식량난이 심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공급받은 설탕과 정원에서 난 민트 추출물로 민트 향이 나는 사탕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는 불쾌한 냄새 때문에 광산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습니다. 산양유는 냄새가 심해서 싫어했지만 아버지가 저를 위해 만드시는 모습을 보며 맡았던 민트 사탕 냄새는 너무 좋았어요.” 단지 이 이야기가 1942년에서 1945년까지의 북한 단천의 모습을 보여주는 타임캡슐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좋았던 건 이 이야기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과거를 기억하고 연결하는지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달콤한 향기와 뒤뜰 언덕에서 풍겨오는 흙과 나무 냄새, 그리고 새벽 5시의 탄광 냄새와 염소젖 냄새…. 이 냄새들이 언제나 향긋하기만 한 건 아닐 겁니다.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이야기인 것이지요. 저는 이번 전시가 관람객으로 하여금 그들의 상상력을 발휘해 각자의 향기 기억을 떠올리는 기회가 될 거라 기대합니다. 설희 아주 사적이지만 동시에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사람이 사회, 나라, 세상의 일부’라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었죠. 저는 제가 대학에 들어가서 막 서울에 상경했을 당시의 장면을 떠오르게 해주어서 다음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사회 초년생 때 고시촌 오르막 꼭대기에 살았는데 퇴근하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이 진짜 힘들었다. 그냥 길바닥에 드러눕고 싶을 만큼. 그런데 귀갓길 중간쯤에 있는 세탁방에서 나오는 빨래 건조 냄새를 맡으면 어쩐지 따뜻하고 안락한 집이 떠올라서 힘을 내서 갈 수 있었다. 사실 해가 잘 안 드는 눅눅하고 좁은 집에 살고 있어서 내 집에선 그런 냄새가 안 났는데도…. 약간 성냥팔이 소녀같이 그 길에서 냄새를 맡는 찰나에는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안락하고 따뜻하고 풍요로운 집을 엄청나게 떠올리는데 정작 고시촌 꼭대기를 기어 올라가면 현실 속 내 집은 그런 집이 아니고. 뭐 그런 기억.”



부산비엔날레에서 드로잉과 회화를 음악으로 번역하는 무소르그스키의 접근법을 활용한 것처럼, 이번 전시 역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향기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번역’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요. 향수 브랜드 논픽션과의 협업으로 프랑스, 싱가포르, 중국, 한국, 아일랜드, 일본의 향수 개발자와 소통하며 한국적인 향기에 대한 시야를 넓혔습니다. 오픈콜로 수집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정아가 선별한 키워드를 각국에서 모인 14명의 조향사가 해석했기 때문에 진정 흥미로운 글로벌 ‘번역’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고’ 조향사와 향도 예외가 아닙니다. 향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일찍이 1959년에 로만 야콥슨은 어떻게 언어적 텍스트를 다른 기호 체계로 번역하거나 변환할 수 있는지 제시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향기 기억을 향수로 변환하는 것과 비슷하죠.
말한 대로 모든 곳에서 살고 일하는(lives and works everywhere) 작가의 정체성부터 전 세계에서 수집한 오픈콜과 타국에서 거주하는 두 예술감독까지, 이번 전시는 ‘Foreigners Everywhere’라는 본전시의 주제와도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ODORAMA CITIES’에 대한 기획은 아드리아노 페드로사가 본전시의 주제를 공개하기 이전에 이루어졌습니다. 흥미로운 우연인 셈이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거주하는 외국인 큐레이터와 덴마크 오르후스에 거주하는 한국인 큐레이터로 구성된 2인조 예술감독을 임명했습니다. 구정아는 30년 이상 한국 이외의 여러 나라와 지역에 거주해왔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조향사들은 제각기 다른 국적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 살면서 한국의 향과 냄새를 해석합니다. 우리는 말 그대로 ‘Foreigners Everywhere’입니다.
〈KANGSE SpSt〉, 2023-2024. Bronze, plywood metal, pigment paint, scent diffuser, sensor, H 157cm. Courtesy the Artist. © KOO JEONG A
〈KANGSE SpSt〉, 2023-2024. Bronze, plywood metal, pigment paint, scent diffuser, sensor, H 157cm. Courtesy the Artist. © KOO JEONG A
한편 향을 분사하는 디퓨저로 기능하는 조각은 인광 안료를 머금고 있습니다. 암흑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는 인광 안료는 가시적 세계 너머를 보여주는 물질로 구정아의 작업에서 중요하게 활용되어왔습니다. 우리가 부산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Seven Stars〉도 인광 회화 연작이었지요. 2012년 프랑스 바이비메르섬에 설치된 212m² 크기의 〈OTRO〉를 비롯한 다수의 대규모 스케이트파크 연작 역시 인광 안료를 통해 제작되었습니다.
전시장 바닥에 새긴 무한대 기호, 뫼비우스 띠 형태로 부유하는 두 개의 나무 설치작품, 월페인팅, 향을 퍼뜨리는 디퓨저 조각과 16종의 향기 설치작업까지 다섯 개의 작품은 결국 작가가 수년간 연구해온 ‘OUSSS’를 상기시킵니다. 만약 미지의 관객이 ‘OUSSS’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OUSSS’는 1990년대에 구정아가 만든 단어입니다. ‘OUSSS’는 내부나 외부로 설명될 수 없고, 유기적으로 떠다니며, 때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나 타자성에 근접한 무언가로 묘사될 수 있는 것들을 포함합니다. ‘OUSSS’는 결코 정착하지 않는 유기체라는 점에서 구정아라는 작가 자신이기도 하죠. 그것은 언제, 어디에나, 여러 공간과 장소에 동시에 존재합니다. 구정아는 작품과 그것 사이에 그어진 선을 찾아내서 분석하고 이내 흐리게 만듭니다. 한국관의 시도 또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 «KOO JEONG A - ODORAMA CITIES»는 4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열린다.

손안나는 〈바자 아트〉의 편집장이자 〈바자〉의 피처 디렉터다. 《오도라마 시티》를 취재하며 자신만의 지극히 사적인 향기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역시, 엄마의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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