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아가 한국관을 향기로 채운 이유

구정아가 한국관을 향기로 채운 이유

바자 2024-04-26 08:00:04 신고

구정아는 ‘그저 평범한 것은 없다(Nothing is merely ordinary)’는 태도 아래 흩어지기 쉬운 일상의 소재를 활용하고, 익숙한 장소에 기묘하게 개입하며 평범함의 시적인 측면을 일깨워왔다. 고대 철학가 플라톤은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인간의 감각기관 중 시각이 다른 감각기관보다 우월하다고 믿었지만 구정아의 생각은 다르다. 그의 작업은 언제나 다중감각적이다.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소리, 빛, 향, 온도 같은 요소를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가상과 현실, 없지만 있는 것 등 상반된 두 개념 사이를 오가며 오감을 사로잡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KOO JEONG A - ODORAMA CITIES»는 그중에서도 향/냄새에 주목했다. 구태여 향과 냄새를 병기하는 이유는 공동 예술감독 야콥 파브리시우스와 이설희가 밝혔듯 그것이 이번 전시의 의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Scent’와 ‘Smell’은 큰 차이가 없을지 모른다. 한국어에서 향은 ‘미’이며 긍정적인 것, 냄새는 ‘추’이며 부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 향기와 악취가 공존하듯, «ODORAMA CITIES»는 후각 매체를 특정한 속성에 가두지 않고 보다 폭넓은 범위에서 포용한다.
구정아는 1996년 옷장 속 나프탈렌을 활용한 〈Pullover’s Wardrobe〉를 시작으로 꾸준히 작업에 향을 적용해왔다. 그는 2011년 미국 뉴욕의 히스패닉 커뮤니티에서 열린 디아 아트 재단의 전시 «Constellation Congress»에서 향을 통해 기억을 소환하고 감각하는 실험을 했다. 갤러리는 삼나무 벽장 속에 들어온 것처럼 텅 비어 있었고 사방에서 독특한 냄새가 진동했다. 비가 내리기 전, 아시아 어느 도시의 습한 공기를 포착한 〈Before the Rain〉이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작가는 2016년에는 영국 런던의 채링크로스역에 버려진 주빌리 라인 플랫폼에 설치한 〈Odorama〉를 통해 빛과 향의 상호작용을 파헤쳤다. 언젠가 사람들의 수다와 안내 방송, 지하철 바퀴 같은 소음으로 가득했을 그곳엔 한동안 스포트라이트 조명만큼 짙은 그림자와 차분한 침향이 유령처럼 떠돌았다. 동명의 향/냄새 작품 〈ODORAMA CITIES〉는 〈Odorama〉의 연장선에 있다. 2020 부산비엔날레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로 첫 인연을 맺은 두 예술감독의 한국관 전시 제안에 구정아는 평소 머릿속에 있던 〈ODORAMA CITIES〉에 대한 구상을 즉석에서 술술 꺼내놓았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시도해서 안 될 수도 있는 거지만, 그게 뭐 그리 문제가 되나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건 다 이야기해보는 거예요. 인간의 모든 화학작용이 그렇듯 협업도 일상적으로 먹고 마시고 돌아다니고 이야기하면서 이루어집니다. 관계가 형성되면 작업도 시작되죠. 그러니까 존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언제나 관계가 우선이죠. 카를로 로벨리가 우주가 존재에서 관계로 이동했다고 말한 것처럼 정말 그래요.”


〈Odorama〉와 〈Before the Rain〉이 각각 채링크로스역과 히스패닉 소사이어티라는 공간에 맞추어 기획한 장소특정적 프로젝트라면, 〈ODORAMA CITIES〉는 작가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한국의 도시들을 이야기로 취합하여 향/냄새로 추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말하자면 에디팅인 셈이죠. 한국의 자화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협업은 언제나 해왔던 것이지만 오픈콜은 확실히 색다른 체험이었습니다. 여러 나라, 다른 도시에 있었던 이들이 특정한 기간에 겪은 사적인 이야기들을 듣는 일 말입니다. 이미지를 연상하고 형상을 구현하는 작업이 이런 방식으로도 가능하다는 걸 새로 배웠지요.” 구정아는 ‘오픈콜’ 방식을 채택하여 ‘개개인이 가진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을 수집하기 위하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설문지를 배포했다. 남한에 사는 한국인에서 남북한을 방문한 외국인, 해외 입양인, 이민자로 차츰 궤도가 넓어졌고 6백여 편의 향기 기억이 모였다. 거기엔 동시대 한국인의 추억도, ‘모든 곳에 살고 일하는’ 이방인의 연대도, 오감이 예민한 예술가만의 공감도 있었다.
“제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유년 시절,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갔을 정도의 나이에 맡은 할머니 할아버지 방 냄새가 기억납니다. 낡은 이불의 쿱쿱함과 어른용 화장품 스킨 향기. 보일러로 따끈따끈하게 데워진 장판 냄새가 뒤섞인 것이었어요. 어린 저는 매일 저녁 9시만 되면 그 방으로 뛰어가 뉴스 오프닝 곡에 맞춰 엉덩이를 이리저리 씰룩대며 재롱을 피우곤 했는데, 춤이 끝나면 그 방 냄새의 진원지인 할머니 할아버지의 품에 꼭 안겨있곤 했어요. 그게 사람의 세포가 죽어가는 냄새라는 건 중학생 때쯤 알았어요.” 작가가 특히 인상 깊었다고 밝힌 이 사연은 1996년 혹은 1997년 서울의 향기 기억이다. 이야기를 향으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그가 수백 명의 향기 기억 속에서 날것의 단어들을 추출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했다. “반복되는 단어들이 있었습니다. 소나무 향, 한옥과 온돌방 냄새, 진달래 향기 같은 것들이었죠.”
구정아가 이렇게 선별한 키워드와 스토리는 브랜드 논픽션과 협업한 조향사 도미니크 로피온을 통해 향/냄새로 개발됐다. 그 과정은 분명 지난했으리라. 6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기억을 수십 종의 향으로 도출하는 시도가 얼마나 험난한 여정이었을지 알 것도 같다. 이렇게 탄생한 〈ODORAMA CITIES〉는 작가가 창조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형상의 디퓨저 조각 〈KANGSE SpSt〉에 담겨 전시장 전체에 퍼져나간다.
한편, 한국관은 시인 김혜순에게 그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한국의 향/냄새에 대한 시를 의뢰했다. 구정아와 김혜순의 만남 역시 2020 부산비엔날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혜순이 부산의 몇몇 장소에 대한 다섯 편의 시를 창작했고 구정아는 이에 화답하며 어둠 속에서 찬란히 빛나는 인광 회화 연작 〈Seven Stars〉를 선보였다. “김혜순 시인에게는 언제나 ‘텔레파시’를 보내고 있죠”라며 환대의 미소를 지은 작가는 그러나 김 시인과 사적인 친분은 없다. 다만 창작이라는 극점에서 소통할 뿐이다. “김혜순 시인은 ‘저녁 메뉴’라는 작품에서 어머니가 부엌에서 요리하는 풍경을 묘사합니다. 굉장히 극적이죠. 예술가는 창작을 할 때 이걸 해도 되나? 싶은 문턱을 만날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 장면은 정말이지 목숨을 걸고 한 표현 같았달까요. 김혜순 시인의 추상과 은유는 저에게 기이한 체험이었어요.” 이번 협업은 4년 전처럼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하다. 지난해 김혜순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작업에 대해 “내 나라의 지도에서 엄마 냄새를 발견하고, 내 나라를 냄새 맡는 일”이라고 언급한 적 있다. 김혜순이 찾은 한국의 냄새는 ‘어머니 냄새’다. 예술가 김범은 언젠가 향에 대해 이렇게 고찰한 적 있다. “우리가 왜 그 무언가를 느끼면 그것을 향이라 부르는지, 그리고 왜 거기에서 느끼는 그 무언가를 설명할 수 없는지에 대해. 그것은 아주 먼 옛날 우리가 익히 알던 무언가에서 그러한 냄새가 났었던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무언가 우리에게 아주 좋았던 것, 너무나도 소중하던 것, 그래서 지금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항상 그리워하고 필요로 하는 그 어떤 것에서 말이다.” ‐ ‘향에 대한 메모들’(〈향〉, 시공아트, 2009)
나는 ‘어머니 냄새’라는 단어만으로 나의 엄마의 냄새를 맡았고 그리웠고 “그 프라이팬에 엄마의 두 손을 튀겨왔던”(김혜순, ‘저녁 메뉴’) 숱한 밤이 기억났으므로 김범의 의견에 동의한다. 나에게도 향은 과거시제다. 그래서 작가에게 묻고 싶었다. 600여 조각의 기억을 더듬어 만들어낸 향/냄새에 어떤 미래성이 있느냐고. “기억이 없을 수는 없지만 기억만 있을 수도 없겠지요. 사람들이 향수를 뿌리는 건 자신의 과거를 상기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리셀렉션(재선별)하기 위해서지요. 이번 전시 또한 그런 의미입니다.” 그리고 구정아가 그리는 한국이라는 초상화도 그렇게 새로운 향수를 뿌리고 내일을 준비한다. “전 세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한국이라는 국가를 한반도로 제한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그렇게 이번 프로젝트는 탈국가적인 개념으로 확장됐습니다. 저에게 ‘한국적’인 것은 우리 그리고 모든 세대가 함께 만들어가는 어떤 비전입니다. 경계가 없는 향과 냄새라는 물질을 통해 우리 공동의 미래가 개발되고 발명되기를 바랍니다.”
2024년 2월, 서울에서 만난 구정아.
2024년 2월, 서울에서 만난 구정아.
작가는 여기에 한 가지 힌트를 덧붙였다. “나무가 병에 걸리면 자가 치유를 위해 진액을 생성하죠. 그 진액 추출물로 만든 냄새가 있어요. 사향처럼 지독하지만 조향하고 나면 굉장히 귀한 향이 됩니다.” 파빌리온 전체에 부유하는 향/냄새는 썩어가는 것, 죽어가는 것, 사라지는 것의 역설이 담긴 냄새다. 이 희망의 향/냄새는 각자 자기 동네의 공기를 옷깃에 묻히고 온, 전 세계 관람객의 체취와 뒤섞인 채 ‘이야깃거리가 도사리는 베니스’ 전역으로 멀리멀리 퍼져나갈 것이다.

손안나는 〈바자 아트〉의 편집장이자 〈바자〉의 피처 디렉터다. 지난해 루마 아를에서 구정아의 〈OooOoO〉를 마주하고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에 걸터 앉은 채로 하루 종일 그곳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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