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내림 칼럼] 슬픔은 나의 힘

[벼내림 칼럼] 슬픔은 나의 힘

문화매거진 2024-04-26 13:49:57 신고

[문화매거진=벼내림 작가] 살면서 그림은 어떤 순간에 그리고 싶어질까? 난 슬퍼질 때 그림을 찾았다. 어떤 그림은 다시 꺼내어 볼 때마다 '이때 정말 힘들었구나' 하고 느껴지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이 그림이 그렇다. 마음이 좋지 못할 때 그린 터라 배경도 온통 붉고, 검은색도 꾹꾹 눌러 마구잡이로 그었다. 주인공이 포효하는 모습도 겹쳐 그렸다. 꼭 내 마음 같았다. 마음속 나도 어디선가 저렇게 울부짖고 있을 것 같았다. 

▲ 영화 '푸줏간 소년'을 보고 그린 그림 / 사진: 벼내림 제공
▲ 영화 '푸줏간 소년'을 보고 그린 그림 / 사진: 벼내림 제공


어렸을 적엔 내가 아니었으면 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때 찾은 돌파구는 '몰입'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것에 몰입하기. 나를 떠나있는 시간이 좋았다. 시도해 보았던 것 중 가장 괜찮았던 방법은 영화 감상 후에 인상 깊은 장면을 그리는 일이었다. 영화를 볼 땐 그 속에 들어가 있으니 나를 잊을 수 있었고, 그릴 땐 그림 속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다 보니 또 한 번 잡념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좋은 방법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을 따라 같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그곳엔 나처럼 상처투성이가 되어 너덜너덜해진 이가 있었고, 아무도 내게 해주지 않았던 다정한 말을 해주는 이가 있었고, 시련이 닥쳐도 묵묵히 걸어가는 이가 있었고, 걷다가 용기 내 포기하는 이도 있었다. 다양한 삶을 체험하며 위로 받았다. 점점 더 많은 영화를 접할수록 세계가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 영화 대사 / 그림: 벼내림 
▲ 영화 대사 / 그림: 벼내림 


그 이후로 힘든 순간이 닥칠 때마다 영화의 스크린 속으로, 그림 속으로 도망쳤다. 내가 싫어서 거울 속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할 때조차 영화와 그림은 놓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슬픔이란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이렇듯 자양분이 되기도 하니까. 슬픔은 내게 영화와 그림이라는 좋은 친구를 얻게 해주었다. 지금은 영화와 그림이 도피처의 개념보다는 나라는 사람을 잘 설명해 주는 키워드가 되었다. 슬픔이 만들어준 습관이다. 이젠 슬프지 않아도 영화를 보고 그림을 그린다. 

▲ 그림을 그리는 벼내림 작가
▲ 그림을 그리는 벼내림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나오는 문장 하나가 떠오른다. “무사태평해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밑바닥을 두드려보면 어쩐지 슬픈 소리가 난다”는 말. 슬픔은 나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슬픔이 원동력이 된 셈이다. 앞으로는 슬픔뿐 아니라 모든 희로애락을 그림 그리는 에너지로 잘 변환하여 살아가고 싶다. 더 좋은 그림을 많이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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