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 아니다! 가끔 의심해보자!

‘음모론’ 아니다! 가끔 의심해보자!

평범한미디어 2024-04-29 02:57:11 신고

3줄요약

#2023년 11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이내훈의 아웃사이더] 22번째 칼럼입니다. 이내훈씨는 프리랜서 만화가이자 배달 라이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비양당 제3지대 정당에서 정치 경험을 쌓은 민생당 소속 정당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이내훈 칼럼니스트] 아마존 프라임의 드라마 <폴아웃>이 호평을 얻고 있다. 이미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원작 게임의 세계관을 충실히 재현한 것 외에도 드라마 자체로서 흡입력이 만만치 않다. 특히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원작에서 은유적으로만 표현되었던 거대 기업의 핵전쟁 실현이었는데 사실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불과 3년만에 중동전쟁이 발발했고 그 갈등의 불씨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재작년 2022년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우리가 발딛고 있는 정치 질서는 기득권이 형성해놓은 것이며, 우리는 그곳에서 뻔한 선택지만 강요받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픽=이내훈 칼럼니스트>

 

전쟁은 절대로 홧김에 일어나지 않는다. 전쟁의 뒤에는 항상 이익을 차지하는 경제 집단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전쟁의 후유증은 전세계 시민들이 감당하고 있다. 군수업체의 매출은 상승할지 몰라도 유가와 물가는 급등하고, 금리는 출렁인다. 극소수의 전쟁업자들은 필히 각국 위정자들과 정치적으로 긴밀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폴아웃>에서는 ‘볼트텍’이라는 글로벌 기업의 대주주들이 핵전쟁 대피 공간인 셸터(볼트)를 활성화하고, 인류 개발 실험을 하기 위해 전세계에 핵폭탄을 투하했다는 설정이다. 대주주들은 볼트를 구입한 부유한 생존자들과 함께 살아남아 여러 세대에 걸쳐 자신들만의 실험을 감행한다.

 

<폴아웃>에는 다양한 가상의 존재들이 등장한다. 신체를 재생하지만 결국 좀비처럼 정신을 잃게되는 구울, DNA 실험으로 탄생된 합성 인류, 평생 볼트 안에서 생활한 볼트인, 황무지에서 인간을 잡아먹으며 생존하는 식인, 기계식 파워아머를 입은 전사와 그 집단 등등. 그런데 이들이 그려나가는 이야기는 결코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볼트 지도자 오버시어들은 볼트텍이 제공하는 자원을 해당 볼트인들에게 공급하며 행동과 사고를 통제한다. 극중 볼트 33의 지도자를 투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연히 전직 오버시어였던 베티가 선출된다. 그런데 베티는 사실 볼트 31에서 파견된 사람이었고, 볼트 31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기계가 사람들을 기르듯 볼트텍의 대주주 중 1명(행크)이 볼트인을 양성하여 볼트 32와 33에 공급하고 지배하는 기지였던 것이다. 볼트 33에서 베티가 선출되지 않고 통제에서 벗어났다면 볼트 33은 볼트 32처럼 참극을 맞이해서 모두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볼트 31이 다시 볼트인을 파견하여 대주주의 은밀한 실험을 계속하도록 설계해놓은 것이다.

 

사실 한국 사회도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알게 모르게 자본과 권력이 사람들의 선택지를 정해놓은 측면이 있다. 과거 독재 정권 시대의 권위주의는 소수 정치세력들에게 이익이 독점되어 있었던 만큼 금방 전복되었지만, 21세기 이후의 권위주의는 이익을 폭넓게 나눠가짐으로써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A가 잘못하면 사실상 다를 바 없는 B로 바꿔서 기득권을 유지하므로 A와 B만 잘 관리하면 된다. 무언가 권력에 균열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폴아웃>에서 노먼과 데이브가 격리된 후 노먼이 볼트 31에 갇혀버리는 것처럼 조기 분쇄된다. 사람들은 주류 미디어가 주입하는 선택지 안에서 놀아날 뿐이다. 볼트 33은 사실 우리 주변의 풍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볼트에서 벗어나면 되지 않을까? 자유의지를 되찾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볼트에서 벗어나면 더 큰 혼란의 연속이 펼쳐진다. 먹을 것이 부족해 사람을 마주치면 잡아먹히기 전에 공격하고, 어쩌다 생존 공동체에 들어가면 그들이 만든 거대한 규율에 짓눌린다. 브라더후드는 교회의 전통을 빌려 폭력의 규율화를 이뤄냈는데, 아주 특별한 과정이 있지 않고서는 신분 상승을 하지 못 하고 싸움꾼의 종자로 살다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다. 뉴캘리포니아 공화국의 일원으로 평화롭게 살아가고자 해도, 셸터 실험을 계속하려는 볼트텍에 의해 핵폭탄을 맞고 먼지구름이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폴아웃>이 매력적인 이유는 막장이나 다름 없는 행동들도 모두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핵전쟁으로 정부가 사라진 황무지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사람들을 볼트에 가두고 통제할지언정 그게 정말 나쁜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주인공 루시와 맥시머스는 볼트 4를 빠져나오면서 전력원을 훔쳤다가 돌려주는데 볼트 4 구성원들의 삶을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원작 게임에서는 유저가 멸망과 재건 둘 중 하나를 골라 엔딩을 결정할 수 있었다. <폴아웃>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3년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수십만명이 희생되었고,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핵전쟁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3가지의 길이 있을 것 같다. 셸터의 안락한 생활에 만족하며 세상사에 개입하기를 꺼려하는 길, 황무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길, 세상을 바꾸기 위해 골든룰을 포기하지 않고 버려진 땅을 걷는 길.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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