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사진가 최종언이 전하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아파트 사진가 최종언이 전하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엘르 2024-05-03 00:00:00 신고

상계주공아파트 7단지. 현관 지붕 위에 놓인 의자는 발받침으로 추정된다.

상계주공아파트 7단지. 현관 지붕 위에 놓인 의자는 발받침으로 추정된다.

CDAPT
아파트 사진가 최종언이 전하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아파트의 세계.

‘CDAPT(창동아파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아파트 사진을 찍고 있다. 평생을 살아온 익숙한 공간이 어떻게 관찰의 대상이 됐나
본업은 3D 프린터 설계이고, 사진은 오랜 취미다. 2016년 예전에 살던 창동주공아파트에서 이상한 사실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됐다. 1~19단지 중 5~16단지를 찾을 수 없었는데, 알고 보니 창동이 아닌 상계동에 있었다. 과거 행정구역이 변경되면서 아파트 이름이 바뀐 거였다. 문득 1단지부터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전히 구경할 목적으로 갔더니 익숙한 풍경이 생경하게 다가오더라. 마침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이슈가 불거질 때이기도 해서 이 풍경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쉬워 그때부터 아파트를 보러 다녔다.


UFO를 연상시키는 형상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계주공아파트 8단지 급수탑. 재건축으로 철거돼 현재는 볼 수 없다.

UFO를 연상시키는 형상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계주공아파트 8단지 급수탑. 재건축으로 철거돼 현재는 볼 수 없다.

잠실미성아파트. 지하 마을문고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잠실미성아파트. 지하 마을문고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피사체로서 아파트의 매력은
반전 묘미가 있다. 보통 아파트 풍경에 대한 기대 자체가 없지 않나. 막상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요소가 꽤 많다. 80~90년대에 지어진 단지형 아파트, 그중 규모가 큰 주공아파트를 좋아한다.

특별히 인상적으로 다가온 곳은
부산 망미주공아파트. 작은 산지에 있는데, 특이하게도 산을 깎지 않고 조성됐다. 경사를 따라 앞쪽엔 단독주택 같은 테라스동이, 뒤편엔 1층이 모두 필로티 구조인 15층짜리 아파트가 있다. 1986년 준공 시점을 생각하면 무척 파격적인 시도다. 상계주공 4단지는 15층 아파트 가운데에 412동 하나만 25층이다. 조성룡 건축가의 공모 설계안이 일부 반영된 것인데, 16층 한가운데 어린이 놀이터가 있어 뻥 뚫려 있다. 현재는 사용하지 않지만. 아파트라고 다 같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실험적 시도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방배삼호아파트. V자로 돌출된 중심부의 한쪽은 엘리베이터, 다른 한쪽은 계단이다.

방배삼호아파트. V자로 돌출된 중심부의 한쪽은 엘리베이터, 다른 한쪽은 계단이다.

상계주공아파트 4단지. 15층 아파트 한 동만 25층이다. 1층 필로티와 16층 공중 놀이터 등 조성룡 건축가의 실험적인 설계가 일부 적용됐다.

상계주공아파트 4단지. 15층 아파트 한 동만 25층이다. 1층 필로티와 16층 공중 놀이터 등 조성룡 건축가의 실험적인 설계가 일부 적용됐다.

건물 외 단지를 이루는 다른 요소에도 관심이 많다
오래된 아파트 옥상에서 밖을 보면 바닥이 아스팔트 대신 온통 나무로 가득 차 있다. 정글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개포주공은 깊은 숲속에 들어선 것 같았고, 둔촌주공엔 10층보다 높은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있었다. 아쉽게도 재건축으로 지금은 볼 수 없다. 철거 과정에서 가장 먼저 정리되는 게 나무인데, 보존되거나 이식하는 경우는 드물다. 단지 내 ‘수상한 시설’을 찾는 재미도 있다. 압구정현대 · 청담삼익 · 반포한신 등 한강 주변 아파트에는 군사시설이 있다. 복도식 구조의 중앙 또는 옥상에 마련된 별도 공간에 총안구가 있는 식이다. 88서울 패럴림픽 선수촌으로 지어진 문정시영아파트 측면엔 1층부터 옥상까지 이어진 거대한 경사로가 있다.

일본으로 아파트 답사를 떠나기도 한다. 한국과 어떤 차이가 있나
일본에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유사한 UR 도시기구가 있는데, UR이 짓고 공급하는 아파트 대부분은 임대주택이다. 그래서 재건축 비율이 한국보다 낮고, 유지 관리 수준이 높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도 알고 보면 60~70년대에 지은 것들이 수두룩했다. 큰 단지의 건물 한두 동 정도는 항상 수리 중이었다. 준공 당시 없던 엘리베이터를 새로 설치해 공간 수명을 늘리는 경우도 봤다.


과천주공 12단지 연립주택의 개별 현관.

과천주공 12단지 연립주택의 개별 현관.

부산 망미주공아파트 테라스동의 현관.

부산 망미주공아파트 테라스동의 현관.

최종언에게 아파트란 즐거움 같다. 구축 아파트가 최대한 오래 남길 바라는지
종종 재건축에 대한 질문을 받는데 찬성도, 반대도 안 한다. 다만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남아 있는 동안 최대한 많이 보고 싶다. 철거 중 또는 그 이후에 알게 돼 직접 가보지 못한 곳이 꽤 많다. 어디선가 소리없이 사라지는 아파트가 있다면 제보해 주길 바란다.

그간 촬영해 온 사진이 상당할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나
사라진 단지에 살았던 사람들이 사진으로나마 동네를 추억하면 좋겠다. 각자 삶의 공간을 유심히 살피는 계기도 됐으면 좋겠다. 현재 사는 곳을 ‘더 좋은 집으로 갈아타기 전 단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일상이 너무 밋밋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보면 의외로 재밌는 구석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88 서울 패럴림픽 선수촌으로 설계돼 측면에 휠체어 경사로가 있는 문정시영아파트.

88 서울 패럴림픽 선수촌으로 설계돼 측면에 휠체어 경사로가 있는 문정시영아파트.

집집마다 마당이 딸린 망미주공 테라스동.

집집마다 마당이 딸린 망미주공 테라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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