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우의 굴러서 세계 속으로] 장애인에게 서핑을 가르쳐본 적 있나요?

[김지우의 굴러서 세계 속으로] 장애인에게 서핑을 가르쳐본 적 있나요?

채널예스 2024-05-03 09:54:08 신고

3줄요약

휠체어를 타고 세상을 누비는 구르님 김지우의 여행기.
격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나의 참여를 끊임없이 주장해야 하는 삶

‘다른 아이들이 하는 건 모두 우리 지우도 해야 한다’는 게 나의 엄마, 현미의 지론이었다. 우악스러운 문장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그 말은 장애가 있는 내가 수련회, 소풍, 수학여행에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비장애 아이들에겐 당연했던 참여가, 내게는 늘 큰맘 먹고 신청서에 이름을 기입해야 시작되는 지난한 여정이었다. 학교가 내 참여를 아예 예상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고, 외부 활동을 보조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현미와 나의 아빠 태균이 연차를 내고 수련원 옆방에 묵으며 나를 도왔던 때도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임원 수련회, 아이들이 원처럼 둘러서 있는 강당에서, 내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허리를 붙들어주던 현미, 태균의 손의 느낌이 아직도 내 허리에 남아 있는 듯하다.

장애 학생의 참여 방식을 함께 고민하기보다, 한껏 눈꼬리를 내리고 염려하는 얼굴로 ‘네가 갈 수 있겠니?’ 묻는 학교에서 학생이 가슴을 펴고 당당히 늘 자신의 참여를 주장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장애 학생의 입학과 학교 내에서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생긴 지는 17년이 되어가지만, 장애 학생은 휠체어 접근이 되지 않는 수련회 코스에서, 경사로가 없는 단상 앞에서, 아이들이 열심히 달리는 운동장 앞에서 거부를 경험한다. 이 거부들은 때때로 거친 말이나 명백한 배제보다 더 무섭다. 형태가 불명확한 채로 공기처럼 존재하는 이 차별은, 때때로는 거부하는 사람과 거부당하는 사람이 모두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교묘해서,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면, 거부와 배제는 스펀지에 스며드는 물처럼 장애 학생을 적시고, 그의 몸과 마음을 둔하고 무겁게 만든다.

나 역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에는 익숙했다. 나를 받쳐주던 현미와 태균의 손을 기억하면서도, 언제나 투사처럼 나의 참여를 주장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거부와 배제의 경험이 내 몸에도 스며들어 있었다. 호주 교환학생 프로그램 중 ‘Surf Day’ (서핑의 날) 계획을 보았을 때도, 이미 둔하고 무거워진 마음은 바다 위의 내 모습을 그리지 못했다. 잘해봐야 누군가가 나를 안고 해변의 돗자리에 옮겨주겠거니, 하는 마음이었다.

서핑의 날은 공식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딱 일주일이 되던 날이었다. 무언가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하기에도 촉박한 시간이었고, 그 이전에 내 ‘서핑 참여’를 주장해 볼 생각도 잘 하지 못해서, 그날 내가 동행하는 것이 괜찮을지를 묻는 메일을 담당자 선생님께 보냈다. 곧 해변에는 바다 휠체어가 비치되어 있고, 내가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답신이 돌아왔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오- 적어도 해변까지는 이동해서 아이들을 구경할 수는 있겠군.’이라고 홀로 짐작했을 뿐이었다.



‘당연한 것’을 의심하지 않는 마음

해변에 도착했을 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서핑 강습을 하는 선생님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와 서핑할 때 입는 슈트를 건네 주고는, 내가 쓸 보드와 서핑 방법을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많은 것을 단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호주식 영어를 절반 정도는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 무슨 상황인지를 파악하며 벙쪄 있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알아챘다. 그 해변에서, 내가 바다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어쩌면 나뿐이었다는 것을. 아직 그 분위기를 채 따라잡지 못한 내가 “장애인에게 서핑을 가르쳐 준 적이 있나요?” 묻자, 강사는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는 표정으로 “저는 8년 간 장애가 있는 사람을 가르쳤어요.”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원한다면 나도 당연히 서핑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착착 흘러갔다. 한국, 인도, 미국 친구들이 내게 달라붙어 팔과 다리에 스윔슈트를 쑥쑥 끼워 입혀주었다. 나는 바퀴가 아주 커다랗고 안에 공기가 차 있어 모래에서도 잘 굴러가고, 물에도 약간 뜨는 휠체어를 타고 서핑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해변으로 굴러갔다. 학생들과 같이 동그랗게 앉아 서핑하는 법을 간단하게 듣고, 긴장으로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파도가 치는 곳까지 들어가 몸을 담갔다.

“이제 준비됐나요?”

서핑 선생님이 물었다. 무서웠지만, 엄지를 추켜세웠다. 그러고는 보드 위에 엎드렸다. 일반 서프보드와 다르게, 가장자리에 손잡이가 달린 보드였다. 여행사 직원과 선생님이 내가 엎드려 있는 채로 보드를 들어 파도가 치는 곳까지 들어갔다. 바다가 움직이는 대로 나를 태운 보드가 위로 솟구쳤다가, 떨어졌다. 그렇게 파도를 양껏 맞아본 적도, 이렇게 깊은 곳까지 들어온 적도 없었다. 긴장과 흥분으로 모든 감각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좋은 파도가 올 때까지 양껏 흔들렸다. 저 멀리서 다른 파도보다 높은 파도가 몸을 일으키는 것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이제 가 볼 거예요.” 선생님이 내 뒤에서 방향을 잡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보드의 앞부분이 살짝 들리면서, 파도의 움직임을 따라 세차게 해변으로 밀려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파도를 탄다는 건 생각보다 빠른 거였구나!’ 파도가 만들어낸 진동은 보드를 살짝 삐져나온 내 발에 그대로 전해져 왔다. 저 앞에서 담당 선생님과 여행사 직원이 호응하며 비디오를 찍어주는 모습이 보였다. 함께 오길 잘했다. 바닷물로 푹 젖은 내 온몸이 선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 사건이, 그저 ‘접근성이 잘 보장된 나라에서의 놀라운 경험’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발견했던 것은 그보다는 ‘의심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누구도 내 참여를 의심하지 않는 순간 속에서 나는 파도 위에 엎드려보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나를 믿지 못했던 나조차 “I’ll try it.”(한 번 시도해 볼게요) 이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든 분위기가 나를 파도 위에서 활주하게 했다. 그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장애인의 참여를 의심하지 않는 마음. 장애가 있는 나의 몸과 욕구를 믿는 마음.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내게 손을 내밀 것이라는 마음. 장애인의 시도가 민폐가 아니라고 믿는 마음들이 세상의 지평을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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