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공연·공연장은 10년이고, 20년이고 투자해야죠” [공간을 기억하다]

“좋은 공연·공연장은 10년이고, 20년이고 투자해야죠” [공간을 기억하다]

데일리안 2024-05-03 14:00:00 신고

[다시, 소극장으로③] 서울 대학로 지인시어터(구.알과핵소극장)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데일리안DB
1999년, 불황 속에 시작된 소극장 알과핵

‘소극장 알과핵’은 서울 대학로의 대표적인 소극장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설립 당시부터 알과핵의 출발은 다른 극장들과는 조금 남달랐다. 한국 국민이라면 1997년 IMF 외환 위기 이후 상황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모든 자산은 휴짓조각이 되면서 줄줄이 파산으로 이어졌던 끔찍한 시기다. 1999년 4월, IMF 여파로 대학로 소극장들도 문을 닫을 정도로 불황이 몰아치던 상황 속에서 알과핵은 문을 열었다.

알과핵의 목표는 분명했다. 공연문화를 한 차원 끌어올리겠다는 일념 하나였다. 실제로 개관 이후 단 공연이 올라가지 않았던 달을 손에 꼽을 정도로 극장 운영은 활발했고 무용과 음악, 연극, 뮤지컬, 콘서트, 영화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작품을 소개했다. 자체 기획 작품도 꾸준히 선보였다. 이는 그만큼의 극장 시설과 기획력을 갖추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극장 개관과 시작을 같이 한 극단 알과핵은 ‘빨간 트럭’ ‘쥐사냥’ ‘해마’ ‘찬란한 오후’ ‘무지개가 뜨면 자살을 꿈꾸는 여자들’ 등의 대표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2010년 후반을 시작으로 공연장은 이름을 지인시어터로 바꿨고, 임대 형식으로 매번 운영 주체가 달라지곤 있지만, 워낙 터전을 잘 마련해놓은 덕분에 공연장에는 여전히 쉴 틈 없이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혜화역 2번출구 마로니에공원 바로 뒤편 건물 지하 1층에 자리하고 있어 접근성도 용이하고, 오래된 건물이지만 객석 수 177석(상층 71석, 하층 106석, 보조석 제외)으로 관객 수용 면적도 꽤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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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주는 이야기'와 함께 시작된, 지인시어터의 새 출발

삼형제엔터테인먼트 대표 겸 한국공연제작자협동조합 부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훈제 대표가 지인시어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대표는 대학로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콘텐츠인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의 총괄 기획자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여파로 잠시 공연을 중단했던 이 공연을 지난해 7월 지인시어터에서 재개막, 다시 스테디셀러의 입지를 공고히한 덕에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사실 요즘에 극장을 장기로 계약하는 사례가 거의 없어요. 임대료가 절대 저렴하지 않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지난해에 들어오면서 억대 리모델링까지 하고 들어왔어요. 좋은 공연, 좋은 공연장에는 그만큼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장기적인 투자를 한 거죠.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없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거예요. 10년이고, 20년이고 이어가야죠. 이런 좋은 극장, 좋은 공연을 오래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공연쟁이들의 역할이니까요.”

이 대표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다. 코로나19 당시 부침을 겪긴 했지만 한 작품을 무려 16년을 끌고 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8년 첫 공연을 시작한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는 올해 16주년을 맞았고, 전국 누적 관객 450만명을 돌파했다. 블랙코미디라는 독특한 장르, 그것도 ‘죽음, 자살’ 등의 무거운 소재를 가지고 장기적인 인기를 끄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저희도 힘든 시기가 있었죠. 처음엔 대관료 800만원부터 시작하기도 했고요. 대학로에도 여러 장르의 작품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꽃밭에 여러 가지 꽃이 있어야 예쁜 것처럼, 대학로에도 장르의 다양성이 있어야죠. 대학로에 임대료 지원이 활발해져서 공연이 많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지원, 혜택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질 수 있으면 더 좋겠고요.”

단순히 공연 콘텐츠, 공연장의 성공에 목표를 두지 않고 대학로의 번영을 위해 소상공인들과의 상생을 위한 지원에도 힘쓰는 등 ‘함께 사는 가치’에 방점을 찍고 움직여 온 이 대표의 가치관도 인상적이다. 이런 그의 마인드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공연장을 운영하는 방향성에도 녹아난다.

“가족 뮤지컬, 로맨틱 코미디 등 다양한 공연을 올려서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을 유입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좋은 공연을 만들어서 돈을 벌고, 공연장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서 우리가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지 이 공동체에서 어떤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지를 더 고민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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