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멜로, 스티븐해링턴이 만든 동화적 세계

안녕! 멜로, 스티븐해링턴이 만든 동화적 세계

바자 2024-05-04 08:00:00 신고

〈Stop to Smell the Flowers No. 5〉, 2023, Acrylic on canvas. © Steven Harrington Artworks LLC
〈Stop to Smell the Flowers No. 5〉, 2023, Acrylic on canvas. © Steven Harrington Artworks LLC
서울에서 분 단위 촘촘한 일정을 소화하고 당신의 안식처인 LA로 돌아갔다. 평소 같은 일상을 되찾았나? 전시 막바지 준비부터 오프닝까지 9일 동안 예상치 못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개막 직전까지 작업을 한 터라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얽매이려 하진 않았기에 더 놀라운 경험이었다. 지금은 여느 때처럼 LA 다운타운에 있는 작업실에서 매일 그리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채광과 넓은 테이블, 음악만 있으면 충분하다. 작업실이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편이라 깨끗하게 청소한 다음 이 인터뷰 답변을 쓰고 있다.
10m 규모의 회화 〈진실의 순간〉과 입구에 들어가기 전 설치된 벽화 〈소중한 삶을 위해〉,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니 단연 대형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전시를 구상할 때부터 가장 먼저 커다란 벽화를 상상했다. LA에서 나고 자라며 난 항상 야외에 설치된 예술작품과 벽화에 둘러싸여 있었다. 때문에 LA의 스피릿을 미술관 안으로 가져다 놓고 싶었다. 어떤 작품이든 도전할 기회가 있으면 난 주저하지 않고 잡는 편이다. 가로 35피트, 세로 14피트 크기의 〈진실의 순간〉은 내가 그린 가장 거대한 그림이다. 초안을 위해 캔버스 천 자체를 제작하는 일부터 고군분투했고, 보트 돛을 꿰매는 로스앤젤레스의 한 공장에 의뢰해 천을 직조해낼 수 있었다. 또 손으로 일일이 그린 붓 터치를 살리고자 스튜디오 팀원들과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해내고자 하는 마음과 팀이 있다면, 엄청난 일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경험이었다.

전시명이자 동명의 작품 〈Stay Mello〉에서 짐작할 수 있듯, 곳곳에 강아지 ‘멜로’와 야자수를 모티프로 삼은 ‘룰루’가 수없이 등장한다. 두 캐릭터가 만든 거대한 세계관 안에 관객이 흡수되는 느낌이랄까. 멜로는 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2015년, 의도적으로 인종, 나이, 성별에 개의치 않고 누구에게나 말을 걸 수 있는 존재를 고안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불안에 휩싸이던 시기여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무척이나 내게 명상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멜로는 점차 잠재의식의 상징으로 변화해갔고 이제 유화, 드로잉, 조각, 애니메이션 어디든 자유롭게 등장한다. 전시명인 «Stay Mello»는 작품 속에서 내가 강조하는 테마를 드러낸다. “우리가 사는 혼란스럽고 도전적인 세상 속에서 계속 깨어 있고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자”라는 걸 언어 유희적으로 풀어낸 결과다. 이 메시지가 인격화된 것이 멜로이다. 이렇게 캐릭터를 진화시키면서 상징을 부여하는 걸 즐기는데, ‘룰루’는 성장을 의미하고, ‘음양’ 상징은 삶의 균형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나타낸다.
아트 토이나 애니메이션 등 캐릭터를 좋아하는 이들은 특정 캐릭터 속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할 때가 많다. 멜로는 입 모양이 없는 단순한 생김새를 지녔는데. 멜로의 정확히 그런 생김새 때문에, 관객들로 하여금 감정과 경험을 이입하기 좋다고 판단했다. (환경 오염이나 팬데믹 같은) 아무리 주제가 심각하고 중대한 사안을 다룰 때도 사람들은 작품 속에서 주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하고 작품에 접근하기 쉬운 경향을 띤다.

팬데믹 기간 완성한 작품으로 채워진 1 전시실. Photo: K2 Studio.
팬데믹 기간 완성한 작품으로 채워진 1 전시실. Photo: K2 Studio.
1960~70년대 언더그라운드 만화 장르인 잽 코믹스, 짐 필립스의 스케이트보드 그래픽과 음반 표지 디자인 등에서 볼 수 있는 검은 윤곽선과 함께 당신의 작품에서 햇빛에 바랜 듯한 파스텔 색감은 중요한 구성 요소다. 한겨울의 뉴욕처럼, 햇빛이 드문 도시에서 머물 때 당신은 어떤 상태가 되나? 친형이 파리에 살고 있어서 종종 방문하는데, 그때마다 잿빛 추위를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면 무너진다. 난 누가 봐도 LA의 태양과 깊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웃음)
팬데믹 기간 동안 그린, 꽃으로 가득 찬 〈Stop to Smell the Flowers〉 시리즈를 포함해 대다수의 작품은 배경이 꽉 차 있는 경우가 많다. 작업 과정에서 처음부터 의도한 채 그리는 것인가, 아니면 그릴수록 점점 채워가는 것인가? 모든 작업은 연필과 종이 한 장으로 시작한다. 보통 아주 작은 섬네일이나 스케치를 그리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구성에 익숙해지기 위해 새 종이에 여러 번 다시 그린다. 이때 최종 작품에 대한 청사진을 얻고, 주로 무채색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듯한 느낌이 너무 좋다. 참고할 레퍼런스 없이 세상을 종이 위에 만들어내는 듯한 그 점이. 전혀 내 마음에 들지 않게 나올 때 내 그림들이 추상적이거나 혼란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꽤 계산되고 정돈돼 있다. 판화를 만드는 과정과도 매우 비슷하고, 유일무이한 하나의 작품을 치밀하게 만드려는 것이 예술 안에서 내가 추구하는 방식이다.

전시 공간에 맞춰 완성된 대형 설치작품 〈들어가는 길〉.
전시 공간에 맞춰 완성된 대형 설치작품 〈들어가는 길〉.
디지털 형태로 호환하기 유용해 보이는 당신의 작업들은, 컬래버레이션 작업 이외에는 대부분 붓 터치로 완성되며 디지털 디바이스보다 종이와 펜이 적극 활용된다. 당신에게 펜과 물감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작업에서 화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림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형태로 모두 존재하기에 구분 짓기 더 복잡하지만 스케치, 콘셉트 드로잉, 만화, 디자인 등 모든 유형을 구분해 생각하려 한다. 흑연과 잉크의 느낌을 너무 좋아해서, 요즘은 소묘 작업으로 다시 회귀하고 있다. 소묘는 회화를 그리기 위해 시작하는데, 그 말인즉 소묘는 회화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수단이란 뜻이다. (특히 종이에 세심한 주의를 그리며 그릴 때) 소묘 자체도 하나의 작품이 될 가능성을 갖는데, 나는 그 과정을 매우 좋아한다.
판화를 전공한 뒤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것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사이키델릭 아트의 선구자 빅터 모스코소(Victor Moscoso), ‘아이 러브 뉴욕’ 로고를 탄생시킨 밀턴 글레이저(Milton Glaser) 등 전설적 디자이너들에게 영향받았다고 수차례 언급해왔다. 순수 예술가와 상업 디자이너 사이에서 당신이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나? 모스코소나 글레이저의 작품은 누가 만든지도 모른 채 정말 어릴 때 접했다. 자라면서 내내 미국 전역에서 그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으니까. 그러다 예술학교로 진학하고 난 뒤 그들의 천재성과 유산을 깨달으면서, 1970~80년대 문화에 크나큰 영향을 받았다. 손으로 그린 그림과 그래픽디자인이 혼합된 삽화 문화가 태동한 게 내겐 제일 크게 와닿은 사건이었다. 그들의 작품을 통해 그림 속에서 영혼을 들여다보는 법과 디자인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동시에 깨우치게 되었다.

〈Getting Away (Alive)〉, 2021, Acrylic on canvas. © Steven Harrington Artworks LLC.
〈Getting Away (Alive)〉, 2021, Acrylic on canvas. © Steven Harrington Artworks LLC.
키스, 이케아, 나이키 등 당신이 브랜드 컬래버레이션의 귀재인 점은 6 전시실에 여실히 드러난다. 아티스트 토크에서 “이 패션 아이템들이 내 눈에는 자연사 박물관에 있는 유물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박물관에서 19세기 말에 제작된 물건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문화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살펴보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점이 인상 깊었다. 당신이 맥시멀리스트가 아닐지 추측해보기도 했고. 스스로 열성적인 수집가라 할 수는 없지만, 사물에 대해 호기심과 호감을 가지고 자란 세대로서 늘 디자인이 훌륭한 상품을 선호해왔다. 가구부터 책, 포스터, 만화, 음반, 스케이트보드, 조각까지 모든 것을 예술과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명확한 의도와 미적 감각을 바탕으로 디자인된 것들을 추구해왔다. 협업 기준에 있어서는 예술이 낯선 이들의 삶에도 유용할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선호한다. 반드시 고수하는 원칙은 ‘어떤 발상이든 대단한 아이디어라 여기는 것(Any Ideas are great ideas)’.
희망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당신의 작품을 보다가 ‘낙관은 의지’라던 어느 철학가의 말이 떠올랐다. 절망 속에서도 낙관을 잃지 않는 당신만의 비법이 있다면? 지금으로서는 그 질문이 바로 내가 내 그림을 통해 묻고자 하는 것이다. 그림을 통해 그 답을 찾는 편이 내겐 더 빠를 것 같다. 당신의 말대로, 나는 삶의 낙관적인 측면을 더 보려는 경향의 사람이긴 하다. 삶에 희망이 없다면 살아갈 가치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당신이 꿈꾸는 작업에 대한 판타지를 〈바자 아트〉 독자들에게 미리 들려준다면? 거대한 규모의 공공 예술작품을 만들고 싶다. 항상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동경해왔는데, 일반 대중을 위한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내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큰 요소 중 하나는 ‘접근성’이다. 예술과 디자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 현대 예술의 범위 내에서 내 작품이 예술애호가 뿐만 아니라 길 건너편에 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개인에게도 닿을 수 있길 바란다.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어도 나는 그게 내가 예술을 창조하는 어떤 목적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 ≪STEVEN HARRINGTON: STAY MELLO≫전은 7월 14일까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열린다.

안서경은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짐 필립스의 스케이트보드 도안과 스티븐 해링턴의 스케이트보드 시리즈를 비교해보며, 멜로와 룰루가 더 친밀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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