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봄이 한창이다. 샛노란 산수유꽃이 경복궁 영추문 앞을 수놓은 걸 보니 그렇다. 덕수궁 석어당 담장 너머로는 살구꽃이 반기고, 올해도 창덕궁 후원에는 홍매화가 흐드러지게 폈다. 벚꽃이 만개한 선정릉과 종묘는 아침저녁 할 것 없이 호젓하게 걷는 이들로 북적인다. 지금을 놓치면 꼬박 1년을 기다려야 볼 수 있는 풍경이 마음을 부추기는 계절. 평소의 몇 배가 되는 관람객이 몰려오는 봄날 앞에서 문화재 미화원들은 별 수 없이 분주해진다.
이들의 일은 겉으로 잘 드러나진 않지만 하지 않으면 바로 티가 난다. 같은 곳을 몇 번씩 쓸고 닦는데도 산들바람 한 번에 송홧가루로 새파래진 마룻바닥은 어찌할 노릇이 없다. 늘어난 사람만큼 불어난 쓰레기의 양은 또 어떤가. 그럼에도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궁을 거닐고 일반 관람객에게는 출입이 허가되지 않은 공간까지 드나들 수 있는 건 일의 기쁨이 아닐까 생각했다. 계절의 최전선에서 꽃의 피고 짐을 수시로 목격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여지없이 맑은 봄날, 선정릉과 창덕궁에서 일하는 문화재 미화원 네 명을 만났다.
화요일 오후 1시. 선정릉의 박지희, 박미주 미화원이 제향공간인 정자각과 비각 주위를 담당하는 시간이다. 커피 한잔 하며 산책을 나온 회사원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버려진 일회용 컵과 빨대가 눈에 띈다. “여기를 그냥 운동하고 산책하라고 만들어진 공원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요즘은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골치거든. 하면 안 된다고 안내문도 붙여놨는데 모래 때문에 화장실 세면대가 자주 막혀요.” 문화재를 문화재답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건 창덕궁의 이미영(가명) 미화원도 마찬가지다. “출입 금지 팻말이 버젓이 붙어 있는데도 먼지 쓸러 가보면 발자국이 찍혀 있어요. 창호지에 구멍 내는 것도 예삿일이야. 난 먼지 닦을 때도 어디 하나 상처날까 조심스러워지는데 이런 걸 보면 힘이 빠지지.”
지키고 보전해야 할 문화재가 봄 나들이와 인증샷 명소가 되는 사이. 크고 작은 훼손은 일상처럼 행해지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며 작년 겨울 경복궁에서 벌어진 담장 낙서 사건을 떠올렸다. 기사를 준비하는 사이에도 창덕궁에 불을 지르려던 50대 남성을 입건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미화원들은 이러한 현실에 마땅한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가 먼저 귀하게 여겨야 다음 세대도 이 아름다운 걸 누릴 수 있는 거잖아요. 그 사명감이라는 게 있어요.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문화유산에 구석구석 내 손길 안 닿은 곳이 없다 생각하면 자부심도 느끼죠.” 창덕궁에서만 13년째 근무 중인 안숙희(가명) 미화원의 말이다. 내년 은퇴를 앞두고 있는 그는 아침의 고요한 창덕궁을 볼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고 했다. “미화 업무 자체만 보면 힘든 일이 맞지. 근데 이상하게 아침에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면 ‘아우 좋다’ 소리가 절로 나와요. 마음이 좀 경건해진다고 해야 하나. 이런 거 보면 궁 안에서 일하는 건 기쁨이 맞는 것 같아.” 대조전 마룻바닥을 연신 손으로 쓸며 말을 잇는 모습이 꼭 어린아이를 쓰다듬는 손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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