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을 연주하는 사운드 아티스트 권병준

로봇을 연주하는 사운드 아티스트 권병준

바자 2024-05-05 08:00:00 신고

권병준 Kwon Byungjun
1990년대 초반부터 2004년까지 밴드라는 형태와 대중음악이라는 틀에서 활동했다. 네덜란드에서 음향학과 아트사이언스를 배운 후 전자악기 연구개발기관 스타임(STEIM)의 하드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새로운 악기와 무대장치를 만들어 장면을 연출하는 뉴미디어 퍼포먼스를 기획, 연출하고 있다.

싱어송라이터로 음악 활동을 시작해 영화, 패션쇼, 무용, 국악 등 넓은 범위에서 음악을 다뤄왔다. 대중적 음악 활동을 멈춘 후에는 연구와 제작을 거친 소리와 작업물을 전시 공간 안에서 발표하고 있는데, 전방위적으로 음악에 호기심을 갖고 근원을 찾는 듯한 행보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 같나?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님이라 뱃속에서부터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자랐다. 자연스럽게 여러 음악적 소양을 쌓게 되었지만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서양 음악의 특유성과 강압적인 음악 교육 방식에 대한 반감을 내 나름대로 어떻게 소화해낼까, 이런 생각이 내 인생을 좌우해온 것 같다. 사람이 왜 악기에 맞춰야 하는지, 기존의 전통에 왜 몸을 끼워 맞춰야 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악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과정이 내 소리에 관한 체험과 소리의 추구 방식을 정의하고 탐구해나가면서 정체성을 찾는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3»을 수상한 작품들, 쏟아지는 소리와 로봇의 분주한 움직임이 펼쳐지는 무대는 지금까지의 음악 활동에 따른 여러 경험치가 녹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험적인 전자악기를 만들다 좀 더 큰 의미에서의 무대 장치로 확장된 것 같다. 나는 로봇들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한다. 단원이자 밴드 멤버인 존재를 만들어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대중음악을 한 기간보다 그 외의 활동을 한 시간이 몇 배 더 길다. 미디어 아티스트로서의 작업 타이틀, 예를 들면 〈싸구려 인조 인간의 노랫말〉 〈오묘한 진리의 숲〉 〈또 다른 달 또 다른 생〉은 대중음악을 하던 시절의 노래 가사에서 따온 제목들이다. 그때의 마음을 다양한 표현 방식을 사용해서 만드는 것이지 뿌리가 그렇게 다르지 않다. 로봇들이 보여주는 춤과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동작들 역시 내가 느꼈던 여러 감정과 깨달음에 기반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사다리들이 본연의 임무를 잊고 무리 지어 게처럼 움직이고 어떤 로봇은 삼보일배 같은 종교적인 의식 행위를 한다. 로봇의 효용을 다하거나 인간을 돕기 위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다. 인간에게 동요를 일으키고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왜 저런 행동을 할까? 어디를 향해 가나?’ 극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처럼 로봇의 움직임을 통해 느끼게 하고 싶었다.

로봇은 첨단이라는 인상이 있지만 ‘권병준 사단’의 외관은 원초적이다. 사다리가 그대로 드러나고 외팔이 로봇도 많다. 외관은 기능성을 따른 지점이 많고 디자인을 선택하게 된 의미도 있다. 사다리의 경우 기능의 의미에서부터 출발한 작업이다. 사다리는 누군가를 위로 올리는 목적을 가진 도구이고 계속 밟히는 구조다. 한국 젊은이들이 사다리 같다는 생각을 했고 이들이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옆으로 이동하면서 춤추는 것을 머릿속에서 그려봤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모습을 할 이유가 없었다. 외팔이 로봇은 2018년 개인전에서 만든 로봇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그때 12대의 로봇을 만들었는데 현실적으로 돈이 없었다.(웃음) 6대의 로봇은 오른손잡이였고 나머지 6대의 로봇은 왼손잡이였다. 좌와 우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로봇들의 커뮤니티를 생각했고 반쪽이 만나서 온전해지는 합일에 대해 생각한 결과물이다.
〈오묘한 진리의 숲〉은 각자 헤드폰을 통해 사운드를 들으며 낯선 이들 사이의 연대를 형성하게 하는 작품이다. 소리의 어떤 특성이 그 매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출발 지점이 궁금하다. 소리는 공평하다. 그리고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음반을 샀다고 해서 그 소리를 전부 가지게 되었다고 얘기할 수 없는 것이다. 녹음하고 기록하지만 현장성이 중요하고 그 현장의 소리를 함께하는 이들의 연대감과 에너지는 남다르다. 이런 지점에서 고민할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소리의 변주와 변형, 또 다른 매체로의 공감각적 표현을 해왔다. 헤드폰은 2017년 그룹전에서 처음 사용했다. 하나의 공간에서 10팀이 넘는 사운드 아티스트가 한꺼번에 전시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아까 얘기한 것처럼 소리는 너무나 공평하게 퍼져나간다.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할지 생각하다 공간을 인지하고 그 인지된 영역에 따라서 특화된 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헤드폰을 제작했다.
소리를 선택하고 채집하는 과정은? 〈오묘한 진리의 숲〉은 4개의 연작이다. 이방인의 목소리를 전시 공간에서 들려주자는 생각을 했고 2017년에 제주도에 내려가 예멘 난민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교동도에 있는 탈북민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충남 홍성에 내려가 다문화 가정의 자장가를 모으기도 했다. 이주민들은 한국 자장가가 아닌 고향의 노래를 부를 텐데 그 소리들이 잊혀지기 전에 채록을 해야 했다.
작품이나 전시에서 음향의 질이나 효과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나?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예로 들자면 입체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미 기술이 너무 과다한 상황에서 기술 시연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기술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바이노럴이라는 기술을 사용해 녹음했다. 쉽게 말하자면 ASMR 같은 건데 굉장히 내밀하고 세밀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내밀함’이라 함은 결국 직접 옆에서 듣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런 소리와 전시장의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외부의 소리를 적절히 섞어 새로운 소리 풍경을 만들어내려고 의도했다.

박의령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세 아티스트를 만나 ‘사운드’의 정체성에 한 발짝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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