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머와 전자음악가가 한 팀이 된다면?

프로그래머와 전자음악가가 한 팀이 된다면?

바자 2024-05-06 08:00:00 신고

3줄요약
(왼쪽부터) 오천석, 김나희(노트북 화면 속), 황휘.
(왼쪽부터) 오천석, 김나희(노트북 화면 속), 황휘.
업체 eobchae
프로그래머 김나희, 기획자 오천석, 전자음악가 황휘 3인으로 이루어진 오디오 비주얼 프로덕션 컬렉티브. 따로 또 같이 느슨함과 팽팽함 사이의 결속력으로 영상, 웹, 사운드, 퍼포먼스 등의 매체를 넘나들며 활동한다. 백남준아트센터, 뮤지엄헤드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사운드트랙 앨범 〈The Deciders Chamber〉를 발표했다.

업체의 시작은? 휘 천석과 나희가 같은 과 친구였다. 다른 과였던 나는 졸업할 때쯤 친해졌고 졸업 후 작업 하나를 같이 하면서 업체를 결성했다. 천석 2016년에 만든 〈I.WILL.SEOUL.YOU〉는 서울의 굉장히 창피스러운 공간을 모은 작업이었다. 그런 장소는 보통 숨겨두거나 행정기관에서 관광지로 포장해서 보여주는데 우리는 본격적으로 관광 지도처럼 만들었다. 나희가 웹사이트를 만들고 휘가 영상을 만들었다. 나희 팀을 결성할 때 꼭 작업물을 만들고 전시하는 단체가 아니라 만든 것으로 수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업체라고 지었다. 업체라고 하기엔 약간 창피한 수준의 돈벌이지만.(웃음)
세 구성원은 서로 구별되는 뚜렷한 작업 스킬이 있다. 나희 본업은 프로그래머다. 그에 맞춰 웹과 네트워크 기술에 관련된 작업을 한다. 성이나 가족 구성이라는 테마를 웹사이트, 포스터, 영상 등으로 풀어내며 개인적으로나 업체와 엮어 전시를 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 아이를 위해 여러 명의 ‘아버지 후보’에게 레지던시 기회를 주는 가상의 프로젝트 〈대디 레지던시〉라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천석 두산아트센터 LED 타워에 전시되고 있는 〈롤라〉 시리즈를 더 확장해 8월에 세마 벙커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다. 업체가 근 2년간 관심을 가진 주제가 에너지와 에너지를 유통시키는 인프라다. 석유도 고생대의 생물이 죽어 만들어진 유기물이지 않나. 좀 더 거친 발상으로 몸을 박테리아에 감염시켜 동력 에너지를 만들어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한 작업이다. 나희와 주도적으로 만들어갈 예정이다. 휘 전자음악을 주로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현재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전시에 참여 중이다. 미래에 기후위기로 인한 파국을 맞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과거가 된 현재의 기술을 유물로 재건하는 이야기를 담은 노래와 영상을 만들었다. 개인 음반을 만들 때도 발표하지 않았을 뿐 항상 영상을 만들었다. 업체에서도 영상과 사운드를 맡고 있다.
개인 작업물이 팀의 작업물로 확장되기도 한다. 김나희의 〈대디 레지던시〉로부터 시작된 가상의 사운드트랙 앨범 〈The Deciders Chamber〉가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 같다. 휘 나희가 만든 〈대디 레지던시〉는 보편화된 미래에 태어난 아이들과 세상을 상상하며 만든 앨범 프로젝트다.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동안 살을 붙여가며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때가 많은데 이 작업 또한 그랬다. 〈대디 레지던시〉를 업체의 작업으로 합선하려던 시도를 꾸준히 하다 쌓여 있는 사운드를 앨범으로 만들고자 했다. 두 가지 콘셉트가 있었는데 하나는 작곡가 로리 앤더슨의 앨범 재킷에서 옷차림과 포즈를 모티프로 따왔고, 독일의 클래식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의 고풍스럽고 믿음직한 톤앤 매너를 빌려왔다. 앨범을 실제로 발매하면서 없지만 있는 것이 되었다. 가상의 권위를 갖추게 된 것이다.
작업 안에서 암호화폐, 블록체인, 오라클 등 새로운 가치 체계가 만들어내는 인간과 사회의 변화를 꾸준히 다루고 있다. 구성원 각자의 관심사가 어떻게 하나의 관점으로 모아지게 되는지 과정이 궁금하다. 휘 나희와 천석이 먼저 아이디어를 내는 편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쌓아 나가다 대본 형태로 구체화되면 내가 사운드와 영상을 어떻게 구현할지 계획을 세운다. 나희 미디어와 관련된 기술 중에서 새로 대두되는 걸 눈여겨보다 제시한다. 미술계에서 아직 다뤄본 적이 없는 걸 재미있게 구성해 이쪽으로 가져오는 걸 늘 염두에 두고 있다. 천석 그때그때마다 흥미가 가는 책이나 이상한 뉴스에서 픽업하는 편이다. 얼마 전에는 마개조(상식을 넘어서는 개조) 카에 꽂혔다. 다만 이상한 포인트 자체를 향유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그 현상을 둘러싼 것들이 새로운 작업의 단초가 된다. 휘 원래 디스토피아에서 영향을 많이 받아왔는데 새로 알게 된 나의 원천은 기독교인 것 같다.(웃음) 정작 나는 종교가 없는데 기독교적인 환경에서 성장했다. 친척들 모두 종교가 있고 학교도 기독교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인지 음악이 종교적이라는 피드백도 자주 받는다. (이렇게 다른 데?) 일동 결국 유머 코드. 웃겨야 한다.
모두 없는 걸 있는 것처럼 잘 포장하는 재주가 있는 게 아닐까?(웃음) 천석 도피주의라서? 나희 우리의 작업 과정이 제한된 틀 안이라면 모래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샌드박스에서 노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끼리 이상하고 웃기게 생긴 성을 지어놓고 재미있다고 깔깔거리는. 제대로 작동하는 프로덕트를 만들 수 없으니 가상의 프로덕트로 진짜와 대결하려는 제스처가 그럴 듯하게 보여지는 것 같다.
소리와 영상으로 이뤄진 작업물을 전시장이라는 공간으로 들이는 일은 어떤가? 휘 전시장에 작업이 놓인다는 사실 자체를 잊으려고 한다. 전시에 놓이는 것이 작품의 최종 버전이 아니라 디지털 파일 그 자체인 것 같다.
업체나 업체의 작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천석 빅테크와 경주하는 아티스트 컬렉티브. 나희 가능세계 20분 맛보기.

박의령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세 아티스트를 만나 ‘사운드’의 정체성에 한 발짝 다가섰다.

Copyright ⓒ 바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시각 주요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