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대지의 생명력이 가장 충만한 시기다. 그 중심에 자리한 푸른 보석, 완두콩은 봄철 식탁을 빛내는 대표적인 제철 식재료다. 부드럽고 달콤한 맛, 통통한 모양, 그리고 다양한 영양소 덕분에 완두콩은 오랫동안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왔다.
한국에서는 완두콩을 쌀과 함께 밥을 지어 먹는 '완두콩밥'이 대표적인 봄철 별미다. 쌀의 구수함에 완두콩의 달콤함이 더해져 봄 입맛을 돋우는 건강식으로 사랑받아 왔다.
완두콩을 곱게 갈아 전으로 부쳐내거나 죽으로 끓이는 방식도 한국 식문화 속에 남아 있다. 특히 완두콩죽은 소화가 잘되어 어린아이들이나 환자, 노인들의 회복식으로 자주 등장했다. 그 순한 맛과 고소함은 가족을 위한 마음이 담긴 따뜻한 한 그릇이었다.
이러한 완두콩은 단지 맛있는 식재료로서만이 아니라 과학, 역사, 문화 속에서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해온 작물이었다.
완두콩의 영양과 지속 가능한 가치
완두콩은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하며 식이섬유, 엽산, 비타민 C·K 등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특히 육류를 대체할 식물성 단백질의 대안 식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을 생각한 식문화로의 전환이 진행 중인 지금, 완두콩은 육류를 대체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식품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완두콩을 이용한 식물성 햄버거 패티, 완두콩 우유 등도 대중화되고 있다. ‘맛있는 미래’는 어쩌면 작은 완두콩 안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역사 속 완두콩 이야기
완두콩은 인류 역사 속 중심에서 흥미로운 소재로 사용된 경우가 많다.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수도사이자 생물학자인 그레고어 멘델(Gregor Mendel)은 완두콩을 통해 유전 법칙을 발견했다. 멘델은 7년 동안 2만8000여 개의 완두콩을 교배하며 우성, 열성, 분리의 법칙을 밝혔고, 이는 훗날 현대 유전학의 기초가 되었다.
완두콩은 단지 ‘식재료’가 아니라 생명과학의 역사에서 지적 혁명의 씨앗이었던 것이다. 멘델이 관찰한 것은 식물의 외형이었지만 그 결과는 수 세기 후 인간 유전자 분석과 맞닿는 커다란 흐름으로 이어졌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은 의외로 소박한 완두콩 수프를 즐겼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는 피곤하거나 식욕이 없을 때도 완두콩을 으깬 수프를 먹고 기력을 회복했다고 한다. 이는 위장이 약한 그가 단백질과 영양소를 섭취하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여겨졌으며, 일부 프랑스 병원의 환자 식단에도 채택되었다고 한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젊은 시절, 주변 농장의 채소 수확 장면을 자주 스케치했는데, 그의 습작 중에는 완두콩밭의 풍경이 있다. 녹색의 싱그러움이 그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줬다는 해석으로 완두콩밭은 단지 자연이 아닌, 세계적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회복과 관조의 상징이기도 했다.
세계 식탁 위의 완두콩 요리
영국에서는 으깬 완두콩 요리 '머시 피(Mushy Peas)'를 곁들여 먹는 경우가 많다. 특히 피시 앤 칩스에 곁들여 먹는 이 녹색 페이스트는 바삭한 튀김과 부드럽고 단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미를 자아낸다.
이탈리아에서는 봄이 되면 리소토 알라 프리마베라(Risotto alla Primavera)라는 계절 요리가 등장한다. 완두콩, 아스파라거스, 당근 같은 봄 채소를 활용해 만든 이 리소토는 봄의 색과 맛을 그대로 담은 요리로, ‘녹색의 리듬’을 느끼게 한다.
인도에서는 ‘마타르 파니르(Matar Paneer)’라는 카레 요리에 완두콩이 들어가는데 ‘마타르’는 힌디어로 완두콩을 뜻하며, 큐브 모양의 인도 치즈 파니르와 향신료, 토마토 베이스가 어우러져 진하고 깊은 맛을 낸다. 북인도 가정식의 대표 메뉴 중 하나다.
중국에서는 새우와 함께 볶거나, 옥수수와 섞어 만든 딤섬 소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특히 광둥성 요리에서는 봄철 신선한 완두콩을 살짝 데쳐 볶아내거나, 새우 완자와 함께 제공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이와 같이 식탁 위의 초록 보석 완두콩은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각국의 식문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의 발전에까지 영향을 미친 작지만 위대한 식재료다. 우리가 5월의 시장에서 만나는 완두콩 한 줌은, 수천 년의 재배 역사와 혁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봄이 무르익는 지금, 이 작은 콩이 품고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음미해 보는 건 어떨까? 오늘 저녁, 세계의 요리법 중 하나를 골라 완두콩 요리를 만들어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여성경제신문 전지영 푸드칼럼니스트 foodnetwork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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