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먼트뉴스 이상백 기자]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이 단일 의료기관으로는 세계 최초로 간이식 9천례를 달성하는 기념비적인 새 역사를 썼다. 30여 년간 말기 간질환 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며 끊임없는 도전을 이어온 결과다. 특히 9천 번째 간이식 수술은 8,999번째 수술과 한날한시에 동시에 이뤄져 눈길을 끈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간이식팀은 지난 4월 30일(수), 알코올성 간경화를 앓아온 윤모 씨(여, 43세)에게 조카 정모 씨(남, 20세)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 수술에 성공하며 세계 첫 간이식 9천례를 달성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는 1992년 8월 첫 뇌사자 간이식 수술을 시작한 이후 32년 8개월 만에 이룬 성과로, 2022년 9월 8천례 기록 달성 이후 불과 2년 반 만에 1천례를 추가하며 독보적인 세계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서울아산병원은 현재까지 생체 간이식 7,502례, 뇌사자 간이식 1,498례를 시행했다. (의료진이 간이식 9천례 달성을 축하하며 5월 7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시행되는 간이식의 85%는 생체 간이식으로, 이는 뇌사자 간이식에 비해 훨씬 까다롭고 합병증 위험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아산병원의 전체 간이식 생존율은 1년 98%, 3년 90%, 10년 89%에 달한다. 이는 간이식 역사가 깊은 미국 유수의 병원 평균 1년 생존율인 92%를 크게 웃도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성적이다.
9천 번째 간이식 또한 생체 간이식으로 진행되었으며, 기증자와 수혜자의 혈액형이 다른 ABO 혈액형 부적합 이식이었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면역학적 고위험군인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행한 경험(1,126례)을 바탕으로 이식 전 항체 억제제 투여와 혈장교환술 등을 통해 안전하게 수술을 성공시켰다.
특히 주목할 점은 9천 번째와 8,999번째 간이식이 같은 날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두 건 모두 생체 간이식으로, 각 수술을 위해 기증자 수술방과 수혜자 수술방 총 4개가 동시에 가동됐다. 단일 의료기관에서 복수의 생체 간이식이 한날한시에 이뤄지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로, 이는 의료진 개개인의 숙련된 능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교한 수술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환자 생존율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하며 세계 간이식계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이승규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가 1998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변형우엽 간이식'은 이식되는 우엽 간에 새로운 중간정맥을 만들어 혈류 흐름을 개선한 혁신적인 방법으로, 현재 전 세계 간이식센터의 표준 수술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 수술법 도입으로 생체 간이식 성공률이 70%에서 95% 이상으로 크게 향상됐다. 또한, 이승규 석좌교수가 2000년 세계 최초로 고안한 '2대1 생체 간이식'은 기증자 2명의 간 일부를 이식받아 기증자 범위를 넓힌 수술법으로, 650명 이상의 환자들이 이 수술을 통해 새 삶을 얻었다. ABO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 역시 세계 최다인 1,126례를 성공하며 혈액형 적합 이식과 대등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간 기증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복강경 및 최소 절개술을 활용한 간 절제술 등으로 기증자의 회복과 삶의 질 향상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까지 생체 간이식 기증자 중 사망이나 심각한 합병증 발생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국내를 넘어 아시아 국가들의 간이식 자립을 위한 전수 활동도 활발히 이어왔다. 2011년부터 몽골과 베트남에 간이식 기술을 전수해 해당 국가들이 독자적인 이식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특히 몽골 국립 제1병원은 올해 2월 누적 생체 간이식 300례를 달성하며 완전한 자립을 이뤄냈다. 터키, 프랑스, 카타르, 카자흐스탄 등 여러 국가에서도 최초의 성공적인 간이식 수술을 이끌며 세계 의학 발전에 기여했다.
더욱이, 1955년 한국 의료 재건을 도왔던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이 2015년 서울아산병원의 생체 간이식을 배우고 싶다며 먼저 협력을 요청해왔고, 이 협약이 최근 재연장됨에 따라 한국의 선진 간이식 기술이 미국에 전수되는 유례없는 사례를 이어가게 됐다.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는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이 9천례라는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환자들이었다"며 "간이식·간담도외과뿐 아니라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의학과, 소화기내과, 감염내과, 소아외과, 소아청소년전문과, 수술실, 중환자실, 병동, 장기이식센터 등 수많은 의료진이 '원팀'으로 뭉쳐 환자들의 장기 생존과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쏟아왔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32년간의 위대한 도전 속에 한 살배기 아기가 청년으로, 죽음 앞에 섰던 가장이 손주를 보는 기쁨을 누리는 등 수많은 생명의 기적이 피어났음을 되새기며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앞으로도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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