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성진 기자] 미국이 자국 내 조선업 부흥 전략 주요 파트너로 한국을 콕 집은 이후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등 특수선 사업자들과의 협력에 속도가 붙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 고위 인사들이 미국을 찾거나, 반대로 미국 해군성과 백악관 인사가 직접 한국을 방한하며 꾸준한 만남과 논의를 이어가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당선 후 “미국 조선업계는 한국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뒤 구체적인 협력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미 파트너로 급부상한 K조선
업계에 따르면 최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등 국내 특수선 양강 업체들은 미국과 교류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제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 참석차 방한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의 이번 면담도 상선과 군함 건조 및 MRO(보수·수리·정비) 등 조선업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면담은 미국 측 요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조선업 협력에 대한 미국의 상당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앞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등 국내 조선업계 고위 인사들은 최근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및 해군성 핵심 관계자와 만났다. 정인섭 한화오션 사장과 신종계 HD한국조선해양 기술자문 등은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열린 ‘2025 셀렉트USA 투자서밋’에 참석해 조선업 투자에 대한 논의를 나눴다. 셀렉트USA 투자서밋은 지난 2007년에 설립된 미국 최대 투자 유치 프로그램이다.
지난달에는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이 미국 장관급 인사로는 처음으로 방한해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직접 둘러봤다. 펠란 장관은 현장에서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만나 MRO 사업 등 협업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美 현지 투자 늘어날까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뺏긴 해상패권을 되찾아오기 위해 강력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자국 조선업에는 세금면제 등 강력한 인센티브 정책을 예고하는 동시에 미국에 입항하는 중국산 선박에 입상수수료를 매기겠다고 발표하며 중국을 압박하고 나섰다. 최근 미군 군함 수(219척)가 중국(234척)에 역전당하며 글로벌 해상 장악력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국회에서는 미 해군 군함 건조를 동맹국에 맡길 수 있게 하는 ‘해군준비태세 보장법’ 등이 발의됐는데, 사실상 군함을 건조할 능력을 갖춘 미국의 동맹국은 한국과 일본이 유일하다. 미국은 군용 선박 등 주요 함정 건조 사업에 ‘미국 기업의 미국 내 건조’를 원칙으로 한다.
한화오션은 이미 지난해 업계 최초로 필리 조선소를 인수하며 미국과 접점을 확대했다. 한화오션은 한화시스템과 함께 필리 조선소 인수에 총 1억달러(약 1442억원)를 투입했다. 미국 해군은 조선업 설비 부족으로 생산뿐 아니라 군함 수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미국 MRO 시장을 적극 공략할 수 있는 전진 기지로 평가받는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미국 MRO 사업 2건(월리 쉬라·유콘)을 수주하기도 했다.
HD현대 역시 지난 4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 헌팅턴 잉걸스와 ‘선박 생산성 향상 및 첨단 조선 기술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미국과 협력 확대에 나섰다. 기술 협력을 통해 미국 방산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포석으로 여겨진다. HD현대는 미국 현지에도 직접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미국 현지 투자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프라와 공급망이 크게 약화된 상태라 숙련공 부족과 기자재 조달 문제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업계 전문가는 “투자를 실시하기 전에 현지 인프라 점검을 면밀히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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