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 더봄] 어른 대공원으로 변신한 어린이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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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웅익 더봄] 어른 대공원으로 변신한 어린이대공원

여성경제신문 2025-06-02 10:00:00 신고

과거 골프클럽 하우스였던 꿈마루 전경 /그림=손웅익
과거 골프클럽 하우스였던 꿈마루 전경 /그림=손웅익

수도권에 테마파크가 없던 시절 어린이들에게 능동 어린이대공원의 인기는 대단했다. 정문을 들어가면서 마주하는 음악분수는 아이들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하기에 충분했다. 동물원, 식물원이 있고, 바다 동물도 볼 수 있었다. 특히 청룡열차를 비롯한 각종 탈것을 갖춘 놀이동산은 아이들에게 환상적인 놀이터였다.

어린이대공원이 호황을 누리던 중 유사한 테마이면서 규모는 어린이대공원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용인 에버랜드와 과천 서울대공원,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생기면서 어린이들이 그리로 다 몰려갔다.

과천 대공원에 이어 청룡열차를 비롯한 놀이시설을 갖춘 드림랜드가 강북구 번동에 생기면서 서울 북부에 사는 어린이들은 드림랜드로 몰려갔다. 그 이후 어린이대공원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어린이 체험관인 상상 나라를 만들고 동물원 등 시설도 많이 보강했으며 입장료를 없애기에 이르렀다.

내가 몇 년 전 오금동 쪽으로 출퇴근할 때는 군자역에서 7호선과 5호선을 환승해야 했다. 그러나 7호선을 타고 출근할 때는 군자역에 내리지 않고 어린이대공원역에서 내려서 대공원 정문으로 들어갔다. 공원을 크게 반 바퀴 돌아서 후문으로 나가면 5호선 아차산역으로 갈 수 있다.

퇴근할 때는 반대로 아차산역에 내려 후문으로 들어가서 공원을 반 바퀴 돌아 정문으로 나와서 어린이대공원역에서 7호선을 타곤 했다. 4계절의 변화를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으니 출퇴근길이 행복했다.

어린이대공원이 일제 강점기에는 골프장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여기 30만 평(약 99만1735㎡)은 당초 대한제국의 황실 소유 땅이었는데 영친왕이 경성구락부에 땅도 기증하고 공사비 일부도 지원해서 골프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준공 당시엔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18홀 골프장이었다. 여기 골프장은 박정희 대통령도 가끔 이용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사회 특권층들의 놀이터였던 모양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어느 날 낮에 골프장이 훤히 보이는 지금의 천호대로를 지나 워커힐호텔로 가다가 골프를 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뭐 하는 인간들인데 대낮에 골프를 치고 있나?”라고 해서 골프장을 없애게 되었다는 야사가 전해온다. 골프장을 다 밀어버리고 주거지로 개발하려는 것을 육영수 여사가 설득해서 어린이대공원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어린이대공원 정문으로 들어가다가 보면 음악 분수대 오른편으로 노출콘크리트로 지어진 아주 오래된 건물이 보인다. ‘꿈마루’라고 이름 붙여진 건물이다. 우리나라의 1세대 근대  건축가라고 할 수 있는 나상진 건축가의 작품이다. 건물 주위 수목이 울창해서 건물 전체를 한눈에 볼 수는 없지만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건물로는 외관이나 재료가 특별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골프장이 있던 시절 이 건축물이 골프 클럽하우스로 지어졌다는 사실과 조성룡 건축가의 노력 덕분에 초기 원형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 건축물의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다. 조성룡 건축가는 꿈마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어떤 물질 덩어리인 건축이, 어떤 공간이, 기품 있게 늙어감을 드러낼 수 있는가···.’

어린이대공원의 랜드마크 팔각당 /그림=손웅익
어린이대공원의 랜드마크 팔각당 /그림=손웅익

나상진 건축가는 많은 작품을 남겼음에도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도 남아있는 그의 작품은 광장동 워커힐호텔 본관, 수원의 경기도청사 구관, 후암동성당, 한예종에 있는 과거 중앙정보부 청사, 대구 파티마병원 등이다. 그의 작품 중에 정원 규모가 제법 큰 주택이 하나 남아있다.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지금은 스타벅스 커피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처음 어린이대공원이 개장했을 때는 그야말로 어린이들의 천국이었다. 세월이 흘러 요즘 어린이대공원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니어다. 앞으로는 더욱 어린이대공원에서 어린이를 만나기 힘들 것 같다. 1973년 5월 5일에 개장했으니 올해로 52주년이 되었다. 그 시절 여기서 뛰어놀았던 어린이들이 이제 나이가 들어 그 길을 걸으며 추억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이제 ‘어른 대공원’으로 명칭을 바꾸어야 하나.

여성경제신문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wison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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