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맹, 방금 내가 고른 것, 정말 내 취향일까? 놀라운 선택의 비밀

나는 내 취향을 잘 알고 있을까? 선택맹(Choice Blindness)의 비밀

만약 당신이 한 연구에 참여하여 두 장의 인물 사진 중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골랐다고 상상해 보세요.

당신은 신중하게 한 명을 선택하고, 잠시 후 연구원이 “왜 이 사람을 선택하셨나요?”라고 묻자, “웃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서요.”, “눈빛이 선해 보여서요.” 등 나름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만약 연구원이 당신이 고르지 않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것이 당신의 선택이라고 했고, 당신은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방금 전과는 다른 이유를 들어가며 그 ‘잘못된 선택’을 정당화했다면 어떨까요?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실제로 이러한 현상은 심리학 실험을 통해 빈번하게 관찰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선택과 그 이유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내가 방금 고른 커피, 어제 산 옷, 심지어 지지하는 정치인까지, 그 모든 선택이 정말 나의 확고한 취향과 신념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의 선택에 ‘눈이 멀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놀랍고도 조금은 당혹스러운 인간 심리의 비밀을 파헤치는 개념이 바로 ‘선택맹(Choice Blindness)’입니다.

선택맹(Choice Blindness)이란 무엇일까요? 더 깊이 들여다보기

선택맹은 스웨덴 룬드 대학교의 페터 요한손(Petter Johansson) 교수와 그의 동료 연구자들이 처음으로 제시한 인지 현상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이 실제로 한 선택과 결과적으로 제시된 것 사이의 불일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이 하지 않은 선택에 대해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설명하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마치 마술사의 속임수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듯, 우리는 자신의 선택이 뒤바뀐 상황에서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태연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선택맹의 핵심은 단순히 선택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결과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이렇게 뒤바뀐 선택지를 마치 자신이 직접 고른 것처럼 받아들이고, 그 선택에 대한 이유를 적극적으로, 그리고 종종 매우 설득력 있게 ‘사후 합리화(post-hoc rationalization)’ 또는 ‘이야기 꾸며내기(confabulation)’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자신의 선택과 그 이유에 대해 얼마나 유연하게(?) 생각하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선택맹을 밝힌 놀라운 실험들

선택맹(Choice Blindness) 현상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그 존재가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1. - 얼굴 매력도 실험 (요한손 외, 2005):
   • -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두 명의 여성(또는 남성) 얼굴 사진을 차례로 보여주고, 둘 중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고르도록 했습니다.
   • - 교묘한 카드 마술 기법을 사용하여, 연구원은 때때로 참가자가 선택한 사진 대신 선택하지 않은 사진을 참가자에게 건네주며 “이 사진을 왜 고르셨나요?”라고 질문했습니다.
   • - 놀랍게도, 대다수의 참가자(약 74%)는 사진이 바뀐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 -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자신이 실제로는 거절했던 얼굴 사진을 보며 “저는 이 사람의 미소가 마음에 들어요.”, “눈매가 매력적이네요.” 등과 같이 구체적이고 그럴듯한 이유를 제시하며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했다는 점입니다.
2. - 잼 맛 평가 실험 (홀, 요한손 외, 2010):
   • - 연구팀은 슈퍼마켓 쇼핑객들을 대상으로 두 가지 종류의 잼을 맛보게 하고 어느 것이 더 맛있는지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 - 특별히 제작된 잼 용기를 사용하여, 연구원은 참가자가 선택한 잼이 아닌, 실제로는 그들이 방금 거절했던 잼을 다시 맛보게 하면서 “선택하신 잼입니다. 왜 이 잼을 고르셨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라고 물었습니다.
   • - 이 실험에서도 많은 참가자(약 67%)는 잼이 바뀐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자신이 처음에는 별로라고 했던 잼의 맛에 대해 “과일 향이 풍부해서 좋아요.”, “단맛이 적당해요.”라며 긍정적인 평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3. - 정치적 견해 실험 (홀, 스트란드버그 외, 2013):
   • - 참가자들은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쟁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설문지에 표시했습니다.
   • - 이후 연구원은 참가자 몰래 그들의 답변 일부를 정반대의 입장으로 수정했습니다.
   • - 잠시 후, 수정된 설문지를 참가자들에게 다시 보여주며 자신이 표시한 ‘견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 -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상당수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원래 입장과 반대로 조작된 답변에 대해서도 마치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상세한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정책에 ‘반대’한다고 표시했던 사람이 ‘찬성’으로 바뀐 답변을 보고도 “네, 저는 이 정책이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찬성합니다.”라고 말하는 식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후각 선호도, 소비자 선택, 심지어 도덕적 판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선택맹 현상이 관찰되었습니다. 이는 선택맹이 특정 상황에 국한된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인지 과정의 일부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우리는 왜 선택에 눈이 머는 걸까요? 그 심리적 메커니즘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처럼 자신의 선택이 뒤바뀐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심지어 그 잘못된 선택을 정당화하는 것일까요? 몇 가지 심리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1. - 미약하거나 부재한 선호도: 많은 일상적인 선택 상황에서 우리는 사실 확고하고 명확한 선호도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처음 접하거나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대상에 대해서는 선택이 임의적이거나 상황적 요인에 의해 쉽게 좌우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선택이 바뀐다 해도 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2. - 사후 합리화 및 이야기 꾸며내기: 우리의 뇌는 일관성과 의미를 추구하는 ‘이야기꾼’과 같습니다. 일단 어떤 결과(내가 어떤 것을 선택했다는 ‘사실’)가 주어지면, 우리는 그 결과에 맞춰 논리적인 설명을 만들어내려는 강한 동기를 느낍니다. 이는 인지부조화를 줄이려는 노력과도 연결됩니다. 내가 한 선택과 그 이유가 일치해야 심리적으로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3. - 내성(Introspection)의 한계: 우리는 종종 자신의 선택 이유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내적 상태나 동기에 대해 완전하게 접근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행동을 먼저 하고 나서, 그 행동을 바탕으로 자신의 태도나 선호도를 추론하기도 합니다.
4. - 실험 상황 및 권위에 대한 신뢰: 실험 참가자들은 연구자나 실험 상황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가지고 참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연구원이 제시하는 정보(예: “이것이 당신이 선택한 것입니다”)를 의심 없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5. - 인지적 부담 및 주의력 분산: 만약 우리가 다른 생각에 몰두해 있거나 인지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라면, 선택과 결과 사이의 불일치를 감지할 주의력이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6. - 해석하는 마음(Interpretive Mind):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고 재해석하며 일관된 자아상과 현실감을 구축합니다. 선택맹은 이러한 해석 과정이 얼마나 유연하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선택맹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선택맹 현상은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해에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 - 선호도의 가변성: 우리의 취향이나 선호는 생각보다 훨씬 더 유동적이며, 상황적 요구나 미묘한 암시에 의해 쉽게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 자기 이해에 대한 질문: 우리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이토록 쉽게 ‘속고’ 또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자신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 것일까요?
• - 마케팅 및 설득 전략: 마케터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소비자의 선택을 미묘하게 유도한 후, 그 선택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심리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는 그것이 전적으로 자신의 주체적인 선호였다고 믿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 기억과 목격자 진술의 신뢰성: 선택맹은 기억이 얼마나 재구성적이며, 잘못된 기억이나 정당화가 쉽게 형성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법정에서의 목격자 진술의 신뢰도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 - 정치적 담론과 여론 형성: 사람들이 자신의 실제 신념과 다른 주장을 얼마나 쉽게 받아들이고 옹호할 수 있는지를 고려할 때, 정치적 메시지나 여론 형성 과정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필요합니다.
• -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 우리가 인생의 중요한 결정(진로, 관계 등)에 대해 내세우는 이유들이 항상 그 결정 이전에 존재했던 깊은 동기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아니면 어느 정도는 결정 이후에 구성된 이야기일까요?

선택맹의 시대, 우리는 더 현명해질 수 있을까?

선택맹 현상을 이해한다고 해서 우리가 모든 선택 상황에서 완벽하게 합리적이거나 자신의 내면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몇 가지 노력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선택 과정을 좀 더 의식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1. - 선택맹 현상 자체를 인지하기: 이러한 심리적 경향이 누구에게나 존재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2. - 중요한 선택 앞에서는 마음챙김과 성찰 연습하기: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잠시 멈추어 자신의 진솔한 감정과 이유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3. - 자신의 ‘이유’에 대해 반문해 보기: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이유를 설명할 때, 그 이유가 정말 선택 이전에 존재했던 것인지, 아니면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이야기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4. - 모든 선택에 과도한 의미 부여하지 않기: 사소한 일상적 선택들에 대해서는 완벽한 자기 이해나 확고한 이유를 찾으려 애쓰기보다, 뇌의 효율적인 정보 처리를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5. - 중대 결정은 핵심 가치에 기반하기: 인생의 중요한 선택은 순간적인 선호도보다는 자신의 핵심 가치에 기반하여 내릴 때 더욱 일관되고 진정성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6. - 어느 정도의 ‘알 수 없음’을 수용하기: 어쩌면 우리는 모든 선호나 선택에 대해 수정처럼 맑고 흔들림 없는 이유를 가질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인간 마음의 복잡성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내 안의 이야기꾼을 이해하기

선택맹은 우리의 마음이 현실을 얼마나 능동적으로 구성하고 해석하는지를 보여주는 매혹적이면서도 때로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현상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완전히 비합리적이거나 진정한 선호가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내면세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유연하며, 때로는 스스로 만들어낸 이야기에 스스로 설득당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줄 뿐입니다.

선택맹에 대한 이해는 우리 자신을 좀 더 깊이 탐구하고, 우리가 내리는 선택과 그 선택에 부여하는 의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방금 내가 내린 선택,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 내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은 과연 얼마나 나의 진솔한 내면을 반영하고 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 자체가 우리를 더욱 성숙한 존재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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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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