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제약업계의 불법 리베이트 관행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국내 주요 제약사와 의약품 도매업체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단행하고 병원장 등 의료인에 대한 소환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지출보고서’ 제도가 시행된 지 6년이 지났지만, 관련 수사가 반복되며 보고서만으로는 리베이트 관행을 구조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지출보고서 제출 대상 2만1789개 업체 중 18.2%가 의료인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 총액은 8182억 원에 달했다. 지출보고서는 제약사가 의료인에게 제공한 금전성 지원 내역을 기록·보고하는 문서로 주요 항목은 학술행사 지원비, 설명회 개최비, 시판 후 조사비 등이다. 복지부는 이를 통해 불법 리베이트 발생 여부를 사후 점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장에선 누락·축소 기재 사례가 적지 않다는 우려가 이어져 왔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본질이 ‘단속’이 아닌 ‘구조’에 있다고 강조한다. 2010년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 이후 일정 규모 이상의 제약사에 대해 지출보고서 제출(2018년) 및 공시(2023년) 의무가 단계적으로 적용됐지만, 여전히 보고서는 사후 적발보다도 면책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보고 누락 실태는 행정처분 사례로도 드러나고 있다. 식약처는 2022년 한 제약사가 학술행사 명목으로 지출한 약 3억원 상당의 금액을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사실을 적발해 ‘작성·보관 의무 위반’으로 행정처분을 내렸다. 해당 사례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언급됐으며 실거래 내역과 보고 간 불일치가 제도 신뢰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후 관리의 실효성 부족에 대한 지적도 이어진다. 복지부는 지출보고서 일부를 표본 점검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나, 점검 대상과 방식은 비공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보고 의무 위반에 대한 행정조치가 미흡하다며 실효성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복지부는 관련 자료에 대한 표본 점검 비율조차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맞물려 ‘성분명 처방’ 정착 부족도 리베이트 유인의 구조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은 동일 성분 간 가격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성분명 처방을 장려하고 있으나, 한국은 브랜드명 중심의 처방이 일반적이다.
정부는 2022년부터 성분명 처방 확대를 위한 시범사업을 시행했지만, 참여기관 도입률 등 구체적 성과 통계는 제한적으로만 공개되고 있다. 때문에 특정 회사 제품에 대한 처방 고정이 이어지고, 리베이트 유인이 반복 재생산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전문가들은 지출보고서 공개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소비자가 자신이 처방받은 의약품의 가격 및 유통 정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보고 양식 세분화, 공공 DB 연계, 공개 범위 확대 등 종합적 개편이 필요하다”면서도 “개인정보보호 및 기업 기밀 문제로 제도화엔 제약이 따를 수 있다는 점도 병행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는 투명성 강화를 위한 공시 시스템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CMS(Centers for Medicare & Medicaid Services)가 운영하는 ‘오픈페이먼츠(Open Payments)’ 시스템을 통해 제약사 및 의료기기 업체가 의료인과 병원에 지급한 금전 내역을 매년 공개하고 있다. 일본 역시 후생노동성 가이드라인에 따라 일본제약산업협회(JPMA) 회원사가 강연료, 학술비, 홍보비 등을 자율 공시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와 관련해 2023년 국정감사와 2024년 국회 상임위 질의에서도 “지출보고서가 면책을 위한 형식적 절차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반복됐다. 감사원 역시 최근 ‘의약품 유통 투명성 확보 방안’과 관련한 사전기획 조사를 통해 유통 구조 및 리베이트 규제 전반에 대한 점검 필요성을 언급한 상태다.
궁극적으로는 리베이트가 작동할 수 없는 유통 구조로의 전환이 과제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약값의 10~20%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소비자가 확인할 수 있어야 시장이 바뀐다”며 “단속보다 구조 개혁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출보고서가 제약사 면책용으로 기능하는 구조에서는 근본적인 투명성 확보가 어렵다”며 “약가 책정, 유통 마진, 의료기관 간 거래 흐름까지 데이터 기반으로 공개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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